1015730분 공연을 보았다. 장소는 두산아트센터였다. 이전에 두산아트센터에 갔을 때, 네이버 지도를 켜고 갔었는데 한참 헤맸었던 기억이 있다. 네이버지도는 두산아트센터 입구를 몰라 빙 둘러 가는 길만 설명을 해주었다. 이 글을 읽는 두산아트센터에 가시는 분들은 이 방법으로 가지 말고 종로5가역 1번 출구로 나와 제일 먼저 있는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시면 된다. 바로 보인다.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은 여성이 강자가 되고 남성이 약자가 되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실제의 현대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은 남성이, 남성성은 여성이 행하고 있는 이갈리아라는 나라이다. 이갈리아의 지도도 여성이 임신한 모습을 띄고 있다. 내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소년 페트로니우스가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인 잠수사가 되고 싶다며 남자용 잠수복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 처음에 모든 배우가 무대에 등장을 하는데 그 광경은 가히 충격적이다. 서있는 몸의 모습부터 옷, 화장 등 전부가 반대로 바뀌어 있다. 춤을 추는 방식도 다르다. 여기서 웃긴 건 남자들은 우스꽝스러운 게 되고 여자들은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왜 사회에서 여성이 하는 치장은 우스꽝스러울까.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 극 중 남자들이 드랙퀸(여기서는 드랙킹일까?)을 보러 가는(장소를 무엇이라 칭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여자들이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남자들은 와 신기하고 멋지다 여자들이 저런 옷을 입다니 등의 대사를 하는 부분은 참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남자들이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있는 건 공연을 보는 내내 이질감이 들었고 여자들이 드레스를 입고 있는 건 평소 보던 모습들이기에 이질감이 전혀 없었다. 내 나름대로 편견 없이 살고 싶었지만 역시나 몇 십년간 교육 받은 걸 한 번에 떨쳐내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 떨쳐낼지 확신도 못 한다. 열심히 노력은 할 테지만 말이다.

 

- 아이들에게 성평등적인 교육을 하려 하는 남자 선생님은 여자 교장선생님께 지탄을 받아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가르침을 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구조를 모르는 사람들은 용기가 없어서, 자신의 신념이 당당하지 못해서 따위의 말을 하며 본질인 권력따윈 다 지워버리고 이성적인 척 난리치는 꼴이 생각났다.

 

- 남선생님의 제자들은 남성인권모임을 만들었다. 토론을 하며 서로의 힘이 되어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레즈비언인 여자가 자신도 그쪽에 관심이 있으니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쉽게 받아들인다. 그리곤 남자들이 이러한 운동을 하자고 제안을 하면 여자가 옆에서 아니아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너무 과격해.”라고 한다. 이런 하이퍼리얼리즘이 다 있나 싶었다. 여기선 워맨스플레인 이라고 불리려나.

 

- 미투운동과 관련된 대사들도 있다. “요즘은 개나소나 다 자기가 피해자래. 뭔 피해자야 자기들이 뭔 피해를 봤는데. 하여튼 참을성이 없어. 이번에 그 의원 짤리는 거 보고 세상이 미쳐돌아간다 싶었다니까? 증거도 없는 일을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 의원은 가정이 있는데.”, “성폭행 당했다고 말한 사람, 원래부터 그렇게 질 좋은 애는 아니었대. 그러니까 그 사람이 일부러 우리 엿 먹이려고 거짓말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 하고싶은 말이 많지만.. 이 말의 문제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을 다시 해 봤으면 좋겠다.

 

- 되게 신기하고도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경험을 했는데, 공연을 볼 때까지는 정말 내가 이갈리아에 속한 기분이었다. 강자가 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속이 시원하기도 했고 아무 것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공연이 끝난 이후에는 결국 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도 아저씨가 나를 치고 가면 기분이 나쁘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혼자 걸어갈 때도 누가 쫓아오진 않을까 걱정하며 괜히 주변을 보는 척 뒤를 쳐다보고, 안심귀가 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집에 들어가는 그런 원래 내 자리로.

 

- 공연을 보면서 여자 배우들이 행하는 남성성을 보며 저 정도는 약간 과장된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 밥을 먹으러 음식점에 갔었는데 맨 끝에 앉아있는 남자 3명에 여자 1명으로 구성된 테이블에서 남자들이 딱 공연에서 여자 배우들이 하던 말투와 행동, 몸짓을 하고 있었다. 여자분은 옆에서 호호 웃기만 했다. 그걸 보며 과장은 무슨, 하이퍼 리얼리즘이네. 내가 진짜 힘세고 덩치 큰 남자였으면 조용히 해 달라 했을 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 공연을 본 후에 남자들은 차별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생기는 거고, 단지 그냥 아 공연 잘 봤다 하고 끝내고 싶으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선택하든 그들이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참 힘 빠지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는 살기 위한 일인데 누구는 웃고 끝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 이 공연은 커튼콜이 없다. 교수님은 나와 내 동기가 공연을 보러 가기 전날 수업에서 자신의 이번 공연에는 커튼콜이 없다며 그 이유는 자신이 박수를 받을 자격이 없어서 라고 하셨다. 굉장히 다루기 어려운 소재인 거 알고(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해야 하기에), 나였어도 이 공연의 연출가, 아니면 이 극을 만드는 누군가가 되었을 때 지속되는 연습 속에서 내 무지함이 부끄러웠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이런 소재를 시각화 시켰다는 것 자체부터가 이런 공연이 거의 없는 공연계에 아주 좋은 예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이 공연의 마지막 대사는 그래서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요!”이다. 그 후 모든 배우들이 나와 정면의 관객을 말없이 1분정도 바라보고 왼쪽, 오른쪽도 똑같이 한 후 정면을 다시 바라본다. 그 후 노래와 함께 모든 배우가 퇴장을 한다. 난 이 장면에 말이 없지만 대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안 찔리냐? 너 자신을 되돌아 봐라. 이건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며 아무도 결백하다 말 할 수 없어.” 약간 이런 느낌이었다. 사람을 움찔하게 만드는.

 

- 배우들의 말이 굉장히 빠르다. 교수님의 의도라고 하셨는데 그렇기에 배우들이 대사를 약간 저는 것을 족히 4번은 본 것 같다. 전달을 위해서 아주 조금만 더 천천히 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 남자가 자기 아빠에게 아빠는 왜 엄마랑 살아? 라고 하고 아빠는 너희 엄마가 좀 저래도 날 얼마나 사랑하는데! 라고 한다. 이것도 참.. 생각이 많아지는 대사이다.

 

 

짤막짤막하게 한 장면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보았다. 횡설수설하지만 그만큼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여러 담론이 얘기되고 있어 하나로 이으려고 한다면 정말 몇장을 쓸 것 같아 이만 줄인다. 좌석이 없는 걸로 알고는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들 꼭 한번 봤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것이 공연이 완벽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접근을 한 것 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