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부터 시작하는 프로젝트인데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이번 파랑 개인 프로젝트 #056BAF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공지사항'입니다. 뜬금없이 뭘 공지하나 싶으시죠? '공지사항'은 '공연 볼 때 지식인 대신 사용하세요. 항시 대기!'의 줄임말로 연극•뮤지컬 속의 다양한 문헌 정보들을 찾아보는 콘텐츠입니다. 다들 프로그램 북 보신 적 있으실 텐데요. 스토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인물, 시대 배경부터 극 속에 사용된 책, 영화, 음악, 소품 등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 있죠. 물론 처음 공연을 볼 때, 이러한 추가적인 배경지식 없이 관람해도 재밌지만 최근 사전에 파악하지 않고 가면 스토리를 따라가기 조금 어려울 정도로 심오한 극들도 나오고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관련된 정보를 습득하고 극을 다시 보면 같은 장면이더라도 새롭게, 더 깊게 다가오는 것 같아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정보성 콘텐츠를 빙자한 저의 지식 채우기 시간이 될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얼른 시작해볼까요? 푸르른 5월, 이달의 공지사항은 바로
오월이면, 오월이면, 오월이 오면
뮤지컬 <광주>
💡 펄떡이는 심장으로 뜨거운 몸짓으로
뮤지컬 <광주>는 2020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2021년 LG아트센터를 지나 2022년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에 삼연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4월 15일부터 5월 1일까지 약 2주간의 서울 공연과 이틀 동안의 광주 지방 공연을 마무리한 후 9월 세종 지방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광주>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로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문화재단의 '2019 님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시놉시스부터 살펴보면, 광주 시민을 폭도로 몰아 진압하고 정권 찬탈의 명분으로 삼고자 하는 JT를 위해 "광주를 붉게 물들여라"라는 명을 받고 민간인으로 위장한 특수군인인 '편의대'가 광주로 투입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시각, 독재자가 암살되고 민주의 봄이 올 거라 기대하던 시민들은 갑작스럽게 확대된 계엄령과 예비검속으로 혼란에 빠지는데요. 계엄군의 폭력 진압까지 시작되자 윤이건과 정화인은 시민들을 모아 맞서 싸웁니다. 이때 편의대원으로 고향 광주에 내려온 박한수는 눈앞에서 계엄군의 충정봉에 맞은 용수의 죽음을 목격한 후 자신의 역할에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뮤지컬 <광주>는 이런 한수의 감정 변화를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과 함께 그려냈습니다.
✊🏻 여기 뜨거운 심장 있다 푸른 태양이 있다
<광주>는 초연 이후 관객들의 피드백을 수용하여 스토리를 발전시키고 있는데요. 삼연에 와서는 시민군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비중을 늘렸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박한수•윤이건의 커튼콜 등장 순서 변경이 있습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시민군을 조직하고 이끄는 리더이자 관객의 입장에서도 연민을 느끼게 되는 인물이 윤이건이라 생각되어 둘의 순서를 바꿨다고 합니다. 윤이건은 윤상원 열사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기도 한데요. 윤상원 열사에 대해 먼저 얘기하고자 합니다.
윤상원 열사는 들불야학 교사이자 시민군 대변인으로 5.18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분입니다. <광주>의 메인 넘버라고 할 수 있는 '님을 위한 행진곡'도 윤상원 열사의 영혼 결혼식을 위한 넋풀이 노래 중 한 곡이었습니다. 1950년 광주시 광산구 천동마을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며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대학 졸업 후 큰아들의 취업을 바라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서울 주택은행에 취직하였지만, 6개월 만에 다시 광주에 내려와 ‘한남플라스틱’에 취업한 후 들불야학을 설립한 박기순을 만나 그의 권유로 들불야학의 일반사회 교사가 됩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광주 내 공수부대의 과잉 진압이 계속되는 가운데, JT는 언론 통제를 위해 신문사와 방송국에 보도지침을 내립니다. 북한에서 간첩이 내려와 광주 시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등 광주의 상황을 왜곡하고 삭제하여 보도하자 이에 화가 난 시민들은 5월 20일 광주 MBC 건물에 불을 지릅니다. 게다가 21일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 사격까지 행해지자 광주의 진실을 우리 힘으로 알리자는 움직임이 생기게 됩니다. 윤상원 열사는 들불야학 동기들과 함께 ‘투사회보’를 만들어 유인물을 배포했는데요. 제작팀은 문안 작성, 등사, 필경, 배포, 보급 등 역할을 분담하여 진행했으며, YWCA로 작업실이 바뀌기 전까지는 3대의 등사기로 밤새도록 찍어내 21일부터 26일까지 총 10호를 제작했습니다. 투사회보는 광주의 상황이나 집회 및 궐기 대회 일시를 알려주는 소식지이자 시민 행동강령을 알려주는 지침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21일 이후 달라진 상황이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총으로 무장한 시위대입니다. 시위대가 처음부터 총을 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계엄령 확대 후 계속되는 폭력 진압에도 투석전만 펼치던 시위대를 향해 계엄군은 총을 발포했습니다. 사격수들을 주변 건물에 배치해 도망가는 사람들에게도 총을 쐈으며, 임산부,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 사격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광주 시민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경찰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을 꺼내 무장하게 됩니다. 시위대는 지휘체계를 갖추고 광주시민회관을 본부로 삼았으며, 시민들은 이들을 ‘시민군’이라고 부르며 응원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이를 환호한 건 아녔습니다. 일부 수습위원들은 무기를 반납하고 군과 협상하자고 주장하였는데요.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많은 시민이 이에 무기를 내려놓는 것은 먼저 세상을 떠난 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 주장하며 무기 반납을 반대하여 시간이 갈수록 수습위원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25일 윤상원 열사가 도청을 끝까지 사수할 사람들을 모아 도청항쟁지도부를 새로 꾸렸고 이에 무기 반납을 주장하던 김창길 수습대책위원장이 반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의를 표명하고 도청을 빠져나가면서 갈등은 일단락되었습니다.
5월 26일,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다시 시내로 진입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시민 대표와 종교인들은 계엄군을 향해 광주 시민들이 스스로 수습할 것이니 계엄군은 진입하지 말라며 죽음의 행진을 결행했습니다. 최후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안 윤상원 열사는 도청에 남은 사람들을 모아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억할 것입니다. 학생과 여성 여러분은 살아 나가서 역사의 증인이 되십시오!” 이 말은 <광주> 속 윤이건의 대사로 남아 제 마음속에도 콱 박히게 되었는데요.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남아 27일 새벽 전남도청, YWCA, 전일빌딩 등 광주 주요 건물을 점령하는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산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헬기 사격도 있었는데요. 이날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물이 ‘전일빌딩 245’입니다. 빌딩을 매입한 뒤 허물고 5.18 광장을 확장하려는 계획이었지만, 헬기 사격의 증거를 발견하면서 9층과 10층을 보전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탄흔이 발견되기 전까지 건물 위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와 안으로 발포했다거나 주변 3층짜리 건물에 올라가서 총을 쐈다고 얘기하며 5.18 책임자들은 헬기 사격을 부인해왔는데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안전 감정서에 따르면 탄환의 진행 방향이 수평 또는 하향 각도인 것으로 보아 최소 10층 이상의 높이에서 사격한 것으로 판단되며, 전일빌딩을 제외하고는 10층 이상의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헬기와 같은 비행체에서 발사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실제로 전일빌딩을 가보면 바닥, 벽, 천장, 창문에 총 245개의 자국이 표시되어 있는데, 그중 100발 이상이 계엄군이 쓰던 M-16 소총이라고 합니다. 철거 전에 이런 중요한 증거들을 발견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마터면 증거가 없다며 끝까지 거짓말하는 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뻔했으니 말예요. 열흘간의 항쟁은 비극으로 끝이 났지만, 윤상원 열사의 말대로 5.18 민주화운동은 이후 전국인 학생 민중항쟁으로 이어졌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끈 분들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렇게 기억해야만 하고요.
📢 피를 나눈 동지여 피를 나눈 형제여
오월의 광주에서 뜨겁게 불타올랐던 건 시민군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이곳저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응원하고 지원해주던 광주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매캐한 최루탄 연기를 씻을 수 있는 물을 제공해주기도 하였고 식량을 도청으로 나르고 주먹밥을 만들어 바구니와 양은 대야에 담았다가 시민군 차량이 지나가면 건네주곤 했습니다. 이후, 주먹밥은 광주공동체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시민들 사이에서 또 열풍이 불었던 게 바로 헌혈입니다. 총상이나 충정봉에 맞은 부상자들이 넘쳐나 병원에는 수혈에 필요한 피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때 시민들은 중,고등학생, 가정주부, 유흥업소 여성들까지 너도나도 헌혈에 동참했습니다. 항쟁 기간 내내 광주는 고립된 가운데 사재기나 약탈, 강도도 없었다고 하는데요. 대동세상 광주의 공동체 정신이 빛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 오월의 찬바람이 내 정체를 깨우네
뮤지컬 <광주>를 보면서 고증을 잘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초연부터 꾸준하게 나오고 있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편의대원의 역할에 대한 문제점입니다. 먼저 편의대란 편안한 옷을 입고 움직이는 조직이라는 뜻으로, 일반 사복을 입고 시민들에게 접근해 과격시위를 유도했다고 합니다. <광주>는 이런 편의대원에게 서사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초연 때 다소 안 좋은 평을 많이 들었었는데요. 초연에 비해 재연엔 많이 덜어내었고, 삼연에 더 축소하고 주인공 둘의 순서를 바꾸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 중 한 명이 편의대원이고 특히 윤상원 열사가 남긴 마지막 말이 박한수에게 쓰인다는 점에서 어딘가 찝찝함이 남아있습니다. 실제로 연출과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이 부분에 있어서 반대되는 양쪽의 입장을 듣고 계속 머리를 맞대며 수정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 이야기가 한 편의대원의 증언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토대를 바꾸지 않고서야 이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을 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1980년 5월 27일, 광주 시내에 박영순 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으로 나오셔서 시민 학생들을 살려주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알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는 끝까지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또 연극 <보도지침>에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월간 독백은 계속 나올 겁니다. 나의 말이 아니라 저들의 말을 위해서 나의 영혼이 아니라 저들의 영혼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록할 겁니다. 제주를, 거창을, 광주를, 그리고 수많은 굴뚝과 크레인 위를"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사과 한마디 없이 인정도 하지 않고 죽은 독재자 같은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기억해야만 합니다. <광주>에서 정말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광주 시민 역 배우에게 시민 1이 아니라 각자의 이름을 부여하고 커튼콜이 끝난 후 무대 배경으로 희생자들의 이름과 기억하겠다는 뜻을 남긴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고 이해되지 않는 서사도 있지만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걸 다시 짚어주는 목소리의 역할을 <광주>가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너무나도 중요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일을 다루고 있는 만큼 더욱 신중하게 고민해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광주>는 이미 막을 내려 관람할 수 없지만, 드라마나 영화로도 1980년의 광주를 담아내고 있는데요. 그 중 몇 편을 추천하며 이번달 공지사항을 마치고자 합니다. 대신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공연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공지사항'은 언제나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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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라마 <오월의 청춘>
- 출연: 고민시, 이도현, 금새록, 이상이 등
- 2022년 한국PD대상 작품상 수상
- 매년 돌아오는 오월이 아프지만 견뎌나가는 사람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2 영화 <화려한 휴가>
- 출연: 안성기, 김상경, 이요원, 이준기
- 개인적으로 열흘 간 항쟁에 집중해서 그리고 윤상원 열사를 모티브로 하는 인물이 등장해 뮤지컬 광주와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어서 같이 보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3 영화 <택시 운전사>
- 출연: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등
-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데려다 준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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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awa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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