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도의 시작

‘영화 전공 나’, ‘왕샤’, ‘산디 전공 A’, ‘애니 전공 B’, ‘서양화 전공 C’. 다섯이 자이툰 부대에서 만났습니다. 그들은 미술 전공생이거나, 미술은 아니어도 예술 전공생이라는 이유로 같이 벽화를 그리게 되었어요. 파병비 천 이백만 원, 그 돈으로 뭘 할 거냐는 질문에 각기 다른 대답을 합니다. “단편영화를 찍을 거다.” “영국 유학을 갈 거다.” “파스타 가게를 차릴 거다.” 각기 다른 꿈 얘기를 주고받습니다. 그곳에는 현대무용 전공, 하루 14시간씩 연습실에 박혀 연습만 하던 ‘왕샤’도 있었어요. 왕샤가 뭐냐고요? 중국 사람이냐고요? 땡! 왕샤는 왕샤넬의 줄임말입니다.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해 얼굴을 감싼 이중무장도 뚫고 들어오는 진한 향수 냄새. 왕샤는 왜 그렇게 향수를 뿌릴까요? 왜 현대무용을 전공하게 됐을까요. ‘나’는 궁금해집니다. ‘왕샤’도 궁금해져요. 쟤는 왜 영화를 하게 됐을까? 샤넬 향수는 왕샤가 자이툰 부대에 온 뒤로 줄곧 진동했고, ‘나’가 영화를 전공했다는 사실은 실없는 수다를 떨곤 했을 때부터 부대원들 사이에 퍼져있던 사실이었어요.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였어요. 그렇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궁금해하지는 않았죠. 둘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이유란 걸 물어봅니다. 왜 그런 거냐고. 초면에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던 둘은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 때문에, 불면증 때문에 쓰게 된 영화 얘기 때문에, 앞으로의 만남에 특별한 계기가 될 밤을 보냅니다.

2. 파도의 이동

그런데 파도가 생기자마자 둘로 나눠지기 시작해요. 다른 게 아니라 ‘나’와 ‘왕샤’의 관계가 어긋났어요. 왕샤가 말합니다. 지금 일은 전부 실수고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그 뒤로 둘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시간을 보내요. 어찌할 도리 없이 파도는 둘로 갈라져서 몸집이 더 커지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어쩌면 더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색해진 둘을 뒤로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자이툰 부대에서의 시간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어요. 벽화의 하늘과 꿈돌이를 같은 색으로 칠할 것인지 다른 색으로 칠할 것인지에 대해 실랑이를 벌이던 날, 모래 폭풍인 줄 알았던 어렴풋한 무언가가 폭발한 그 날. 자이툰 부대에서의 시간이 끝이 났습니다.

저는 이 연극이 ‘사랑’에 대한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나’와 ‘왕샤’의 사랑이 그렇듯 극 전체에 애정 어린 감정이 많이 묻어있어요. 이라크에서 부대원들이 했다던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누군가는 유학을 갈 거라고 말했고, 누구는 영화를 찍고, 레스토랑을 오픈할 거란 얘기요. 서양화 C는 정말로 파스타집을 열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열거라는 조건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래도요. B는 유학은 못 갔지만 유학 갈 돈으로 유학 갈 편안한 마음을 샀고 ‘나’는 졸업 작품으로 <알려지지 않은 보편의 사랑>이라는 근사한 제목의 영화를 찍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왜 이렇게 좋을까요? 자이 부동산이 있던 자리에 ‘툰’ 한 글자만 추가해 ‘자이툰 파스타’ 가게를 열었다는 C의 허술함 때문일까요? 유학 갈 돈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마음을 산 B의 솔직함 때문일까요? 각자의 애정이 담긴 목표를 이뤄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뤘다고 하기에는 불완전해 보일 수도 있어요. 서양화 C의 파스타 가게는 얼마 안 가 문을 닫았고 ‘나’의 영화 관객 수는 일곱 명에 그쳤으니까요. 무엇보다 이 대목에서 ‘나’와 ‘왕샤’가 아주 긴 시간 동안 못 보게 될 사건이 한 번 더 거쳐가기도 했어요. 엉망이에요. 그런데, 어쩌면 그래서 저는 이 대목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엉망으로 끝났더래도 계획했던 걸 완성해본 경험인 거잖아요. 언젠가의 진심과 애정이 담긴 목표를 끝내본 것 같아서 그게 좋아요.

이즈음 해서 ‘나’는 황당한 소리도 엄청나게 듣는데요. <알려지지 않은 보편의 사랑>이 화천 다양성 인권영화제에 갔어요! 축하의 마음도 잠시, 뒤풀이 장소에서 정말 인권영화제스럽지 않은 대화들이 오가요. ‘나’가 만든 퀴어 영화가 너무 발랄하대요. 퀴어 영화다운, 특별한 지점이 있어야 한다고. 일반인들의 연애 얘기랑 다른 지점이 필요하다네요? 결국 ‘나’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얘기까지 듣습니다. 성소수자의 사랑은 어떠어떠해야 한다. 일반 사랑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 그게 대체 누구 입장에서 바라본 건지 정말 묻고 싶어집니다. ‘나’는 말합니다. “당신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발랄한 동성애자들은 현실성이 없고 순전히 다 지어낸 것 같겠지. 애초에 보통의 존재로 생각한 적조차 없었겠지.”

그동안 영화, 드라마, 연극 등 여러 매체에서 성소수자의 사랑을 다루는 작품이 나왔어요. 하지만 공통적으로 당사자성을 반영했냐는 이야기, 불행 서사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죠. 인권영화제 씬을 보며 성소수자의 사랑을 바라보는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나요. 그래서인지 폭력적인 말을 뚫고 들리는 ‘나’의 발랄한 대사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3. 파도의 범람

‘나’는 세상에 없는 퀴어영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보편의 사랑>을 만들었죠. 그런데 ‘나’는 어느 날 자신이 만든 영화가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 특별할 것 없는 사랑을 하다 끝나버리는 맥빠지는 영화라는 걸 깨달아요. ‘나’가 실제로 했던 표현을 빌리자면요. 엄청 씁쓸한데 그걸 그냥 말하더라고요. ‘나’의 깨달음이 너무 현실적이었어요. 언젠가 말도 안 되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가 장렬하게 실패한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다들 한 번쯤 나 자신의 특별함을 버리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때가 있지 않나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찾으려 하고, 가장 잘하고 싶은 걸 위해 노력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항상 대박을 터트리고 목표를 이루잖아요. 근데 현실은 때때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뜻대로 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모두 의미 없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왕샤’가 말해요. “누가 우릴 보면 망했다고 할 걸?” ‘나’가 말해요. “그런 건 망한 게 아니고 완성된 거야.” 또 왕샤가 말해요. “우리는 세상의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 이 대사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세상의 점 혹은 점조차 되지 못했더라도 완성된 거다. 근사한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루지 못했더라도, 설령 미완에 그쳤더라도 우리는 완성을 한 거라는 말요. 이번 작품의 범람은 한 번에 크게 몰아치는 범람이라기보다 긴 시간을 돌아온 파도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작품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와 눈물 젖은 자이툰 파스타’로 변주해서 부르고 싶어요. 여러분은 극을 보고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