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영감님] Ep. 6 이별이여, 작별이여, 배 놓아가자

 

작 : 파랑

6장

 

 

S#.15 꿈 - 들판 (낮, 밖)

 

다은과 닮은 얼굴의 한 여성이 들판을 즐겁게 웃으며 뛰어가고 있다. 그 뒤를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성도 웃으며 따라간다.

 

 

S#.16 꿈 - 한라산 (저녁, 밖)

 

노을 진 한라산을 바라보는 남녀의 뒷모습. 여성은 남성 쪽을 바라보며 어떠한 말을 건네는 듯하다. 그러다 갑자기 뒤를 휙 돌아보는 남성. 얼굴 포커스.

 

 

S#.17 숙소 (밤, 안)

 

다은                   헉!

 

다은, 퍼뜩 눈을 뜨자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다은                   영감님… 영감님이었어. …그보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얼굴이 익숙한데..

 

정신을 차리니 밖에서 들려오는 북, 꽹과리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 창문으로 그 모습을 확인하더니 숙소 문을 열고 나간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물건을 나르느라 분주하다. 그 사이로 무당 옷을 입은 주인 할머니가 보인다.

 

 

S#.18 숙소 (밤, 밖)

 

다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할머니… 할머니 이게 다 뭐예요?

 

심방                   처자, 일어났는가? 내 아침에 얘기해 주지 않았나.

                         도깨비를 쫓아낼 방법을 하나 알고 있다고. 영감놀이라는 건데,

                         도깨비 형제를 불러 처자에게 붙은 도깨비를 데려가게 하는 걸세.

                         일단 두려워하지 말고 앉아보게나. (주변을 둘러보자 준비가 된 듯하다.)

                         이제 슬슬 시작해보자.

 

   다은, 심방 손에 이끌려 멍석 중앙에 앉는다. 악사들이 각종 악기를 치기 시작한다.

 

할머니                신축년 영감놀이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해뜨는 펜션에서 올립니다.

                         신축년 양력 7월 31일입니다. 음력 6월 22일입니다.

                         스물 다섯 이 애기, 돈 벌어 일자리 얻겠다고 낮엔 낮대로 고생하여,

                         어느 누구 넋 들이고, 혼 들여 줄 사람 없어 혼이 났습니다.

                         이 처자 젊은 나이에 회사에서 잘리고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내려왔는데

                         그만 막내 영감님 마음에 쏙 들어서 이리 말라 기력이 없습니다.

 

   초감제, 다은의 서울에서의 삶 오버랩

   다시 커지는 풍악소리. 할머니도 종을 흔든다.

 

할머니                어서 청하자. 아~ 영감님~~. 아~ 영감님~!!!!

 

   악기 소리가 커지고 도깨비 탈을 쓴 사람들이 춤을 추며 걸어들어온다.

 

첫째 아들             우린 서울 남산 먹자 고을 허 정승의 아들 일곱 형제로 팔도강산

                          유람하다가 우리 막내 ‘천하 오소리 잡놈’이

                         제주 한라산에 와 있다 하길래 찾아보려고 팔도 명산을 거느리고는

                         진도 벽파진 울돌목을 지나 추자 안섬, 추자 밧섬, 제주 수평선을

                         근 당하여 제주 사백 리 주를 다 찾아보아도 찾지 못하여 한라산,

                         백록담을 다 돌아보았소. 이 마을에 오고 보니, 이 집에서 향냄새가

                         건듯하고, ‘영감! 영감!’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에 들어왔소.

심방                   아이고 잘 찾아왔소! 수고가 많았소! 거, 영감님들은 무엇을 제일 좋아십니까?

 

첫째 도깨비       우리들은 돼지와 술을 제일 좋아하지

 

둘째 도깨비       유흥도!

 

셋째 도깨비       여자도~!

 

심방                   영감님 댁 막내가 어떤 산을 차지하고 있소?

 

첫째 도깨비       우리 막내는 한라 일대를 차지하고 있지.

 

심방                   그, 산들은 어쩌다 차지하게 된 거요?

 

둘째 도깨비       우리 일곱 형제가 육판서 원로대신의 집을 다 털어먹었더니

                         조정에서 우릴 잡아 죽일 생각을 하는 거 아닌가.

                         첫째 형님이 그것을 아셨고, 우리들의 능력으로 다~ 살아남은 거 아닌가.

                         육판서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도 죽지 않으니

                         결국 살려줄 테니 떠나라고 한 게지.

                         그렇게 각자 흩어져 산을 차지하게 되었다네.

 

심방                   그럼 막내는 어떤 능력이 있소?

 

셋째 도깨비       우리 막내는 아무리 태워도 타지 않지. 그래서 칼로 베어도 불만 탁탁 붙었던

                         거 아닌가.

 

할머니                (확인이 되었다는 듯) 아이고 영감님들, 세상천지 만사 천리 방방곡곡을

                         다스리시느라 고생이 많수이다. 언제 봐도 그 위치 그 모습.

                         이렇게 날씨 좋고 물 좋은 제주에 와주셔서 감사 올립니다.

                         조상서부터 내려온 고약한 연줄에 얽혀 이 판서 댁 외동딸에 이어 고부 이 씨

                         39대손의 장녀도 뜻하지 않은 풍파를 맞아버렸습니다.

                         그 처녀 얼굴 한 번 보는 게 어떻습니까?

첫째 도깨비       어서 빨리 얼굴이나 보자.

 

 가운데에 앉아있는 다은이 보인다.

 

첫째 도깨비       하하, 내 동생이 절실하구나. 너 이놈아, 널 찾으려고 일천 고생을 다 하며

                         찾아왔는데, 어찌 그리 무심하냐. 같이 가자꾸나.

 

넷째 도깨비       막내야. 당장 가기 싫다면, 여기 있는 술과 음식을 실컷 즐기고 가는 건

                        어떻겠느냐.

 

   도깨비들, 저들끼리 술을 권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술을 나누어 마신다.

   혼자 즐기지 못하고 계속 누군가를 찾는 다은. 관중 사이를 두리번거리다 한곳만 바라본다.

 

다은                   영감님!! 거기 있는 거 다 알아요. 나오세요.

 

다은                   헤어지기 전에 작별 인사는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마지막까지 멋대로 하실 거예요?

 

   관중석 사이로 도깨비가 걸어 나와 다은 앞에 앉는다. (관중 소리 Fade Out)

 

도깨비                너 내가 몇 살인지는 알아?

 

   다은, 도깨비의 말 무시하고 잔에 술을 따라준다.

 

도깨비                … 고맙고, 미안했어 그동안. 내가 너한테 줄 게 없단 걸 알면서도

                         널 데리고 다닌다는 게 계속 신경 쓰이더라.

                         그런데도 넌 내 말을 믿고 나의 부탁을 자꾸 들어줘서 미안했어.

                         처음엔 날 본 사람이 너무 오랜만이라 그저 같이 놀 생각뿐이었어.

                         네게 피해를 준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미안해.

 

다은                   뭘 자꾸 미안해해요? 안 어울리게. …나도 싫지만은 않았어요.

                         덕분에 서울에서 싫었던 기억도 제주 내려와선 생각나지도 않았고,

                         혼자였다면 이렇게 알차게 놀지도 못했을 거예요.

 

   사람들, 서우젯소리에 맞추어 짚으로 만든 배를 들고 춤을 춘다.

   뒤에서 북, 꽹과리를 치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                에양차, 에양차

                         이별이여, 작별이여, 배 놓아가자.

 

다은                   그리고 말해주셨잖아요. 지금은 나만 안 되는 것 같고,

                         나만 별종 같아 보여도 결국엔 나도 잘 될 거라고.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도깨비, 다은을 대견하다는 듯 쳐다보고, 다은도 그에 맞춰 도깨비를 보며 웃는다.

 

다은                   자, 마지막 짠할까요?

 

도깨비                잘 살아. (주인공의 잔에 술을 따라준다.)

 

다은                   영감님도요.

 

   다은과 도깨비, 잔을 부딪친다.

   사람들, 배에 제물을 가득 싣고, 북을 울린다.

 

영감1                 이별이여, 작별이여, 배 놓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