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영감님] 작 : 파랑 | Ep. 4 60년만인가… 그런데 저게 어쩐 일로…

[오, 나의 영감님] Ep. 4 60년만인가... 그런데 저게 어쩐 일로...

작 : 파랑

4장

 

 

S#.9 숙소 (아침, 안)

 

새소리가 들리고, 잠에서 깬 다은이 보인다.

 

다은                   (머리를 만지며) 아 머리야.. 어제 주막에서 너무 많이 마셨나? 근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도깨비                (평화로운 아침을 깨는 우렁찬 목소리로 달려오며) 야!! 얼른 일어나! 오늘                 

                        가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야! 일어나! 정신 차려!!

 

다은                   아 맞다 도깨비.. 어제 도깨비랑..

                        (어제의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머리를 감싸 쥐며) 하.. 내가 미쳤지.

 

도깨비                (숙소 창문을 벌컥 열며) 안녕 인간! 잠은 달게 잤냐? 얼추 일어난 것 같으니

                        이제 움직여볼까?

 

도깨비, 주인공 뒷목을 잡고 주인공이 솜털처럼 가벼운 양 단숨에 숙소에서 빼낸다. 얼떨떨한 다은, 어버버 댄다. 그렇게 둘의 첫 외출이 시작된다.

 

다은                   (도깨비에게서 빠져나가려고 하며) 아 잠깐만, 아 잠깐잠깐, 타임 타임~!

 

도깨비와 다은 점점 멀어지며 목소리도 점점 멀어지고, 그 둘을 뒤에서 지켜보는 숙소 주인 할머니의 모습이 비친다.

 

주인 할머니       (나지막이) 60년만인가.. 그런데 저게 어쩐 일로..

 

 

S#.10 한라산 정상 근처 (낮, 밖)

 

도깨비                인간 친구!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뭔지 아는가?

 

다은                   … (묵묵부답)

 

도깨비                바로 자연이야 ~ 본디 이 자연만이 우직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법이지.

 

다은                   (진이 다 빠진 작은 목소리로) 저기요 잠깐만요 좀만 쉬었다 ...

 

둘은 한라산 정상에 도착하고, 도깨비, 양팔 벌려 바람을 맞는다.

 

도깨비                키야~ 정말 상쾌하지 않은가? 이 가을날의 한라산은 그 경치가 조선의

                        한성십영에 견주는걸로 아주 유… (대꾸 없는 게 이상하여 뒤를 돌아본다.)

 

다은, 정상 앞에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도깨비                잉? 거기서 뭐 해?

 

도깨비, 다은이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주인공                아니 영감님.. 영감님은 도깨비고 나는 그냥 인간인데 (숨 몰아쉬며) 좀 천천히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람 잡겠네.. 아이고 사람 살려..

 

도깨비                  (다시 주인공 뒷목 덥석 잡아서 정상 전망대로 옮긴다.) 인간 친구를 둔다는건

                           참 성가신 일이구만? 그러지 말고 제대로 봐봐~ 죽여주지 않나? 서울에선

                          이런 구경 못했을 텐데 실컷 봐둬~

 

다은, 힘들어하던 것도 잠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마음이 풀린다. 다은과 도깨비 한참 경치를 바라본다.

 

다은                   정말 멋있네요. 산에 올라본 지도 얼마 만인지.

 

도깨비                얼마 만인데?

 

다은                 글쎄요~ 16살 때인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려고

                           뒷산에 오른 적이 있어요. 그때가 마지막이네요.

 

도깨비                16살? (중얼거리며) 열여섯이면 내가.. 그때가 일천칠백..

 

다은                   네?

 

도깨비                (화들짝 놀라며) 어 아니야 아니야. 잠시 추억에 젖느라.. 허허.. (너털웃음)

 

다은                   고마워요, 영감님. 저 스물다섯인데 제대로 된 여행을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영감님 덕분에 ~ (홀가분하다는 듯) 제가 호강하네요!

 

도깨비                나도 오랜만에 누군가와 산에 오르니까 형님들 생각이 나네.

 

다은                   형님들? 형도 있어요? 도깨비도 형제가 있고 그래요?

 

도깨비                (귀를 잡으며) 도깨비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 이거 완전 요괴 취급이구만?

                          우리들은 요괴와 다르다고! 그 녀석들은 영리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나처럼

                         이렇게 잘 빠진 모양새도 아니라 이거야~

 

다은                   아! 아! 아파요! 그나저나 제가 도깨비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네요.. 심심한데

                        얘기 좀 해줘요.

 

도깨비                (으스대며, 표정 몸짓 모두 우쭐하듯) 허 참. 그래 뭐 궁금하다면! 우리    

                       일곱 형제들은 전국 방방곡곡의 산을 다스리는 도깨비지. 큰 형님은 서울            

                       삼각산을, 둘째 형님은 백두산을, 셋째 형님은 금강산을, 넷째 형님은 지리산!

                       다섯째 형님은 계룡산! 여섯째 형님은 태백산! 그리고 바로 내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양 손을 사용해서 한라산을 가리킨다.)

 

다은                   (눈치보며 답을 맞힌다.) 하.. 한라산을 맡는 도깨비라는 말이죠?

 

도깨비                (기분 좋아진 듯, 으스대며) 그렇지! 큼 큼! 여기는 내 집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그 말이야.

                          (잡으라는 듯이 팔을 내밀며)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다은                   (힘차고 기분 좋게) 경치 좋은 곳이면 다 좋아요!

 

도깨비, 알겠다며 나만 믿으라는 표정을 짓는다. 도깨비와 주인공, 산굼부리로 이동한다.

 

 

S#.11 산굼부리 (해질녘, 밖)

 

다은                   (아름다운 경치에 감동받은 얼굴로) 여기는 어디예요? 처음 보는 곳인데..

 

도깨비                산굼부리!

 

다은                  (도깨비 말을 곱씹어 보며) 산굼부리..

 

도깨비                아름답지? 그런데 이곳은 처음 생겨날 때 사람들에게,

                          (능청맞게) 그리고 도깨비들에게, 손가락질 받았던 곳이야.

 

다은                   여기 가요? 왜요? 이렇게 아름다운데..

 

도깨비                다른 화산들하고는 전혀 다르게 태어났거든. 펄펄 끓는 용암도, 시꺼먼

                         화산재도 없이 태어났어.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별나다고 차별을 당했지.

                         하지만 지금 봐! 그 자체로 너무 멋있지 않냐? (크게 숨을 들이쉬며) ... 난

                         제주도에서 이 화산이 제일 좋아.

 

다은                   정말 그래요.. 이렇게 멋있는 경치는 처음 봐요. 밑으로 보이는 억새들도 너무

                          멋져요! (양팔 가득 벌리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아 행복하다~

 

도깨비                (흐뭇하게 주인공을 쳐다보며) 너도 그럴 거야.

 

다은                   네?

 

도깨비                지금은 너만 안 되는 것 같고, 너만 별종 같아 보여도 결국엔 너도 잘 될 거라고.

 

다은                   (멋쩍은 듯) 갑자기 뭐예요~ 그래도... 고마워요!

 

도깨비, 다은과 같이 멋쩍은 듯이 웃는데 다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기 시작한다. 도깨비, 어색해서 다은에게 말을 걸려는데 다은이 이상하다.

 

도깨비                인간 친구, 왜 그래. 어디 아픈가?

 

다은                   아.. 머리가 너무 어지럽..

 

다은, 풀썩 주저앉는다. 놀란 도깨비, 다은을 안고 급하게 숙소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