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hitecture]
영화 ‘도둑들’을 본 적 있으신가요? 극 중 도둑들은 미술관 관장의 개인 창고에서 아주 값비싼 작품 하나를 훔칩니다. 이것을 꿈에도 모르는 관장은 자신의 창고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쉽게 말해서 아주 비싼 냉장고죠.” 잠깐 나오고 넘어가는 말이지만, 우리는 이 대사에서 미술품 보관의 핵심 요소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바로 미술 작품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 미술관으로 들어오는 물과 빛을 마다하지 않는 미술관이 있습니다. 미술에 물과 빛이 깃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번 주 ‘Art-chitecture’에서 만나볼 미술관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경기도 미술관입니다.
‘미술에 물과 빛이 깃들 때’
경기도 미술관은 화랑 유원지 내에 위치하며 미술관 전면으로는 화랑 저수지가 인접해있습니다. 잠시 미술관이 건축되기 전 부지의 모습을 상상해볼까요? 미술관이 위치한 지형은 고도나 경사가 크지 않은 평탄지형입니다. 시각적으로 굉장히 개방되어있으며 주위에 고개를 올려야만 보이는 지형물들이 없어 마치 지평선이 넓게 펼쳐져 있는 듯한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저수지의 경치가 더해져,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홀로 우뚝 솟은 건물이 하나 들어오면 어떨까요? 시원하게 펼쳐진 유원지의 풍경을 갑자기 끊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마치 하나의 수평선과 그것을 분절하는 수직선의 불협화음 같아 보일 것입니다. 미술관 앞 아름다운 호수에는 그늘이 질 테고, 주변 경치는 엉망이 될 것입니다. 멋있는 건축물을 완성하는 일은 물론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해당 지형의 지리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건축을 과연 좋은 건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을 계속해서 품은 채로 경기도 미술관의 건축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미술관이 해당 지형의 특성을 깊이 파악하고 건축을 진행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선 주변의 지형에 맞추어 전체적으로 수평성을 강조한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때문에 새롭게 지어진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큰 이질감 없이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룹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수평과는 전혀 거리가 먼 조형물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언뜻 항해하는 배의 돛처럼 보이기도 하고,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고래 같기도 합니다. “미술관은 건물의 낮은 수평성을 강조하면서도 건물의 조형성과 미술관의 상징적인 표현을 위해 수직적 요소가 더해진 거대한 반투명의 유리 벽판 (T.P.G)을 사용했습니다.” 주변과의 조화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축을 매개로 미술관의 존재를 표현할 수 있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리 벽판은 미술관에 건축적 아름다움을 더해줄 뿐 아니라 전시공간과 사무실을 분리하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해양도시로서의 안산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미술관의 존재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건축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미술관은 전면의 호수를 굉장히 중요한 환경적 요소로 해석했는데, 미술관 남동쪽에 인공 수(水)공간을 조성하여 주변 환경과의 통일감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유원지의 호수가 미술관까지 이어지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미술관의 정체성을 건물의 내부에서 외부로까지 확장시킵니다. 또한, 미술관 주변 녹지구릉과 맞닿아있는 미술관의 서측을 경사진 녹화 지붕(Bio-Top)으로 조성해 기존의 자연물과 조화를 이루려 하였습니다. 이처럼 기존의 것을 무분별하게 삭제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고유의 지형·지리적 특성을 살린 점이 경기도 미술관의 인상 깊은 점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세심하게 고려한 것이 평화롭고 차분한 미술관의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하는 것만 같습니다.
“부지가 습지인 점을 감안해 수장고는 1층에 배치되었고 8.5m 높이의 천창에는 개폐의 조정이 가능한 천창 시스템을 두어 자연채광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천창 시스템의 경우,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도입된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또, 순환 통로 및 가변 벽을 두어 다양한 동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전시 공간을 구성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가변 벽과 순환 통로를 이용해 전시 공간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물과 빛을 닮은, 유동적인 미술관의 특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Art-chitecture’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건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멋있는 건물을 완성하는 것이 건축의 다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장(場)을 만드는 것이 건축이 아닐까요? 그리고 어쩌면 미술도 건축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투영하고 또 반영하며, 서로 소통하는 것이 예술, 그리고 건축에 있어 핵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상 ‘Art-chitecture’였습니다. 마치겠습니다.
[현재 경기도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확인하기!]
https://gmoma.ggcf.kr/%ed%98%84%ec%9e%ac%ec%a0%84%ec%8b%9c
인용 출처 : 경기도 미술관 홈페이지, 건축소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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