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여기 한 여자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너무 사랑스럽고 착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잡히기만 해보라고 으름장을 놓는 아주 미스테리한 사람이요.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내숭 없이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해 이상한 또라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또 그 솔직함을 담은 글로 사람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선물하기도 하는데요. 이 사람이 과연 누굴까요. 여러분, 혹시 안나라는 여인을 아십니까~? 뮤지컬 <레드북>입니다.

 

 

 

 

 

 

뮤지컬 <레드북>은 2016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2018년 초연에 이어 이번 여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레드북>은 여성들이 발간한 야설 잡지 ‘레드북’과 안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런던은 여성은 남성의 도움 없이는 혼자 살아가기 힘들며, 자신의 신체 부위조차도 입에 함부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보수적인 나라입니다. 주인공인 안나는 이런 나라에서도 자신의 성적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여성입니다. 그러다 보니 약혼자에게 첫 경험을 고백했다가 파혼당하고 집에서도 쫓겨나 정처 없이 떠돌게 되고, 일자리를 구해도 금방 해고되기 일쑤였는데요. 이렇게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안나는 ‘올빼미’라는 첫사랑과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살아가는데 이런 안나 앞에 하녀 시절 종종 이야기를 들려주던 바이올렛 부인의 손자 브라운이 나타납니다. 안나는 그 후 브라운의 타자 일을 돕다 우연히 ‘레드북’을 판매하는 걸 발견하고 그때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바이올렛의 목소리가 들리며 ‘로렐라이 문학회’에 들어가 ‘레드북’에 야한 소설을 담아내며 사회와 부딪치며 나아갑니다.

 

뮤지컬 <레드북>은 올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양궁 국가 대표 안산 선수도 보고 나오면서 '신사의 도리' 걸음으로 뛰어가는 영상을 올리며 호평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반응처럼 객석 또한 전석 매진 행렬이 이어지며 실제로 한 예매 사이트에서 조사한 2021년 판매 TOP 20 분석 결과 10대, 20대 파트에서 각각 8.7%, 54.7%를 차지하며 2위를 차지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으며 막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보러 갔습니다. 사실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작사, 작곡을 맡은 한정석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가 만난 작품이기도 하고 박소영 연출의 작품을 좋아하기도 하기에 보러 가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계속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막공 전 주라 부랴부랴 겨우 보러 갔습니다. 감상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아 나 왜 이 공연을 이제야 본 거지?’ 왜 다들 이렇게 재밌는 걸 혼자 보고 계셨어요! 더 열심히 설득하셨어야죠! (남 탓하기) 이미 늦은 거 이번에는 그냥 보낼까 했던 나 자신을 매우 친다. 제가 전캐스트도 못 찍고 한 번밖에 못 봤으니까 꼭 얼른 3연 와주세요. 공손하게 작성 중이에요. 저.

 

일단 여성의 소리를 여성의 입으로 내는 극은 참 소중합니다. 여러 예매 사이트 중 그냥 한 곳을 들어가 현재 상연 중인 공연을 쭉 살펴보면 여성의 이야기는커녕 여성 배우도 출연하지 않는 극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창녀 / 성녀 이분법적으로 여성을 구분하는 극들도 존재하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전달하는 극은 소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주로 이런 공연 ‘여성 서사’라고 말을 하는데요. ‘여성 서사’는 이 단어가 방송, 기사 등에서 쓰이기 시작한 후로 끊임없이 얘기가 나오며 잊을까 하면 화제의 선상에 오르고 있습니다. 저도 그럴 때마다 ‘여성 서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여성이 주인공이면 모두 여성 서사인지, 진취적이고 홀로 나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만 여성 서사인지 등 개인마다 생각하는 범위는 다르겠죠. 근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극은 많은 사람의 범위를 수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어 누가 물어봤을 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뮤지컬 <레드북> 中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또, 극을 보기 전에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본 유리아 배우님의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을 여러 번 들었을 정도로 레드북은 넘버도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공연을 보면서 이 넘버를 들으니 500배는 더 좋더라고요. 뮤지컬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넘버 선율에 따라서 파도처럼 저를 감싸는 느낌. 포스터에도 적힌 ‘티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라는 문장이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알게 되고 관련해서 생각나는 주변이 사건들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2막이 끝난 후엔 눈물 콧물 범벅으로 나와 혜화역까지 터덜터덜 걸어간 기억이 있네요.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서 충분해 괜찮아 이젠’

 

 

 

뮤지컬 <레드북> 中 '우리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

 

 

저를 단번에 사로잡은 넘버가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우리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입니다. 로렐라이 문학회는 잡지 <레드북>을 발간한 곳으로 여성들이 글을 씁니다. 안나도 여기에서 올빼미와의 이야기, 바이올렛과 헨리의 이야기를 쓰죠. ‘낡아빠진 관습을 부수고 바보 같은 규범을 허물어 다시 그 자리에 성을 지어 그 자리에 새로운 성을 지어 우리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 이 작은 펜으로 커다란 성을 지어’ 가사를 하나하나 듣다 보면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쓰는가 싶은데 연출까지 마음에 들어 종일 이 넘버만 들은 날도 있답니다. 등장인물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아니라 각각의 특색을 살려 소개하는 부분도 좋고, 한 구성원이지만 유일하게 여성이 아닌 로렐라이는 무대에는 나오지만 넘버는 같이 부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문학회가 여성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마련되어진 공간이라는 걸 강조해주는 것 같아서 이런 부분까지 신경 쓴 거에 놀라웠습니다. 또 이번 <레드북>에서는 이 넘버의 가사처럼 로비 포토존에 여성 작가가 쓴 책들로 성을 만들기도 했다죠!

 

 

 

 

그렇다면 만약 ‘로렐라이 문학회’에 들어가게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글을 써내고 싶은가요?

 

 

지금은 책을 출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브런치처럼 글을 정기적으로 작성할 수 있는 플랫폼도 있고, 삼삼오오 모여 뉴스레터를 작성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소량 인쇄 업체도 많이 나오고 있는 걸 볼 수 있죠. 여기서 깜짝 고백하자면, 스터디 파랑이 7월 한 달 동안 소식이 없었던 것도 바로 대본을 쓰고 있어서였습니다. 한 달 내내 주 3회 정도 만나 큰 틀을 잡고 6명이 전부 이야기를 써와 그 챕터의 주요 작가를 선정하고 팀원들의 이야기 중 좋은 소스를 합해 약 20쪽 분량의 글을 완성했는데요.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에 있으니 저희의 이야기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그동안 레포트, 블로그, 짧은 후기 타래 등 간단하거나 생각 정리 글에 가까운 논문 위주로만 썼지, 소설이나 희곡을 써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단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 한 챕터씩 작성을 할 때, 대사 하나라던가 꼭 넣고 싶은 장면 하나가 떠오르면 이야기가 후루룩 써진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야기를 쓰는 게 정말 재밌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이 프로젝트의 탄생도 전부 전후의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극을 감상하던 저의 관람 태도에서부터 비롯되었으니, 이야기를 지어내는 거에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긴 하네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아마 제가 로렐라이 문학회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런 상상에서부터 출발한 스핀오프 작품들을 써보고 싶다는 겁니다. 지금 딱 떠오르는 작품이 없어서 장르나 작품 등 어떤 이야기를 펼쳐내고 싶은지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제가 글을 쓸 때 저라는 사람이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작년에 파랑파란 프로젝트를 피드백하면서 팀원들이 제 말투와 성격이 글에서 보여서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 난다고 했을 때,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았거든요. 만약 쓴다면, 그렇게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듯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 뮤지컬 <레드북 > 中 '그렇게 써요'

 

 

그리고 <레드북>을 보면서, 꾸밈없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파랑파란의 ‘내가 OO이 된다면’, 파란만장의 ‘N을 위하여’ 모두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에 가까운 글이라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이름을 밝히고 쓰는 글이다 보니 누군가 읽고 적폐해석이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싶어서요. 그러다 보니 제 생각을 줄이기도 하고 비공개 계정에만 몰래 모아두는 등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써오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제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써보려고요. ‘글에는 진심만을 담아 보다 그럴듯하게 애쓰지 말고 보다 그럴듯하게 폼잡지 말고 그렇게 써요 그대로 써요 아무런 꾸밈 없이! 꿈꿔온 모든 것을 담아’ 이건 그저 저의 생각이니까요. 저의 이야기지만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이제 여러분도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생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주 솔직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