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 – O2 & H2O

 

  양혜규 작가 전시의 경우 현대차 시리즈로 선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이기에 그의 예술 작품이 총체적으로 모여있다는 생각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단체전이 아닌 개인전을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현대차 시리즈에 대해 우려한 것과는 달리 관객에게 친절한 전시라고 생각한 이유는 전시 서문에서였다.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작가가 어떤 것들을 고민해왔으며 그것을 어떻게 작품으로 녹여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고, 그 작품들을 보면서 작가의 작업 경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양혜규 작가의 전시는 재료적 속성과 문학적 차용이 돋보이며 상승과 하강의 구조로 스케일이 큰 작업들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작업 방식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전시였다.

 

  양혜규 작가는 블라인드라는 재료를 자주 사용한다. <침묵의 저장고 – 클릭된 속심>에서는 이러한 블라인드가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건드리면 무너지기 쉬운 속성도 지니고 있고,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천장에 매달려 있어서 조금씩 움직이다 보니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솔 르윗 뒤집기> 역시 미니멀리즘 예술가 솔 르윗의 고유한 오브제라고 할 수 있을 정사각형 입방체를 축소시키고 다시 확장-큐브처럼 쌓아 올리고 형태를 변형-하면서 이것을 천장에 걸어 새로운 느낌을 준다. 이 작품에서 더 눈에 띄던 것은 블라인드로 된 오브제 위에 댄 플래빈의 작업을 연상케 하는 형광등이 있고, 그 위에 이 작품과 전시 공간을 비추는 형광등이 있다. 이 모든 걸 보고 있으면 과연 작품을 구성하는 재료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방울 또한 그의 주요 재료 중 하나인 듯 싶다. <소리 나는 가물>이나 <소리 나는 동아줄>은 방울로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방울이라는 게 청각적 속성이 있는 물건인데, 우리는 작품을 만지거나 이동시킬 수 없기에 그 방울 소리를 영영 들을 수 없다. 괜히 움직여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한편 <소리 나는 가물>의 경우 집기를 거대하게 확대시키면서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연상시키고, <소리 나는 동아줄>의 경우에도 우리가 어릴 적 보아왔던 전래동화 오누이 설화를 연상케 한다. 이 두 작품에서 엿볼 수 있었던 문학적 차용도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블라인드와 방울처럼 재료적 속성은 그의 작업에서 꽤 뚜렷하게 보여지는데, <크로마키 벽체 통로> 역시 그러했다. 벽의 뒷면에 KCC 석고보드라고 적혀 있는 것이 일반적인 작품에선 잘 보이는 게 아니기에 재미있게 느껴졌다. 더욱이 출입구가 벽을 통과하는 것이라는 발상에서 출발해, 여러 개의 거대한 오브제를 배치해 놓고 이것을 다시 전시의 공간으로 활용해서 <래커 회화> 작품들을 감싸고 있다. 게다가 래커 회화가 있는 공간은 벽체 통로에 빛이 가려져서 그림자가 지는데 이것이 또 나름대로 아늑한 공간을 조성하고 있어서 새로운 의미를 자아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구각형 문열림>의 경우 금, 은, 음, 양 이라는 네 가지 유형의 손잡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나는 그곳에 비상구가 있어서 비상구의 손잡이와 같이 배치되면서 오는 느낌이 또 재미있게 느껴졌다.

 

 

MMCA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

 

  한편 소장품 하이라이트 2020+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전시를 보러 오는 듯 했는데, 연대기 순으로 한국 미술의 대표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 이 전시를 보는 것만으로도 한국미술을 훑을 수 있는 느낌이다.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백남준, 이우환, 박서보, 최정화, 이불 등 유명 한국 작가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었고, 민중미술, 단색화 등도 모두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흥미로웠던 지점은, 처음으로 마주한 1 부에 있는 작품들이 화려한 액자에 담겨있는 것을 마주했을 때였다. 인상주의나 큐비즘 같은 사조의 작품들 같은 것도 있었는데, 한국의 초기 서양화 작품들이 화려한 액자에 걸려 있는 게 외국에 궁전이었던 미술관에 가서 보았던 작품들 같다는 생각이 밀려 들었다. 어쩌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이 전시의 목적은 소장품들을 소개하는 것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한국 미술의 역사화를 통해 제도를 공고히 하는 뮤지엄이라는 공간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결론적으로 전시 자체는 연대기적 구성을 통해 압축적으로 한국 미술의 역사를 훑어주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말하는 한국의 대표 작가들을 엿보게 되는데, 공공 뮤지엄의 주장이 대중의 인식이 되며 층위가 더욱 공고히 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럼에도 한국 미술 작품들을 한 데 모아 목차를 만든 것 같은 이 전시를 통해 우리는 한국 미술에 보다 본격적으로 입문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도 있다. 이는 관람객에게 순기능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제도의 주입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것

- 제도와 기존의 층위를 공고히 하는 뮤지엄의 속성을 느껴본 적 있나?

- 유튜브를 보면 큐레이터의 전시투어, 라이브 등의 영상이 다수 있다. 시청해본 적이 있는지, 이러한 미술관의 유튜브 운영과 연계 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나눠보자.

- 미술관에 가서 보면 서점 ‘미술책방’이 있다. 방문을 했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 씨엘 제임스 코든 쇼에 양혜규 작가 전시의 전경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