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2020년 8월 5일 관람

 

 

1. 단순히 8월이라서 이 영화를 봤다. 앞부분의 내용들은 클립이나 일부 매체에서 본 적 있었는데, 초반 이후의 전개는 전혀 몰라서 흥미로웠고 몇몇 장면에서는 눈물도 좀 흘렸다.

 

2.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꽤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정서나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가령 남성 주인공의 입장의 이야기라는 점, 그래서 여성 주연은 약간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느낌이라던지, 부자간의 이야기를 다룬다든지, 할머니가 중요하게 나온다든지-봄날은 간다에서는 주인공의 친할머니가 있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사진을 찍으러 온 한 할머니다- 등에서 말이다.

 

3.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자신의 영정사진을 다시 찍으러 온 할머니를 계기로 자신의 사진을 찍는 정원. <봄날은 간다>에서도 할머니는 상우와 은수의 관계를 표상한다(정확한 메타포?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안나서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그리고 정원이 찍은 사진은 정말로 영정 사진이 되며 끝이 난다. 조금 투박한 전개지만, 이게 아니면 어떤 전개가 있었을까.

 

4. 영화를 통해 사진관의 여름부터 겨울까지 반나절을 함께 했다. 사진관은 정원의 마음 속과 같아서 다소 낡고 오래된 물건들이 가득하고 아늑하긴 하나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그리고 사랑하는/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앞에 걸어둔다. 늘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둘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진관을 바라보기도 하고, 다림은 정원의 사진관에 불쑥 들어가 안쪽까지 샅샅이 훑어보기도 하고, 쉬었다 가기도 하고, 함께 맥주를 먹기도 하며, 끝내는 다림이 유리창에 돌을 던지기도 한다. 나는 다림이 그의 사진관에 돌을 던져 유리창에 구멍을 냈을 때 다림이 그에게 정말 큰 사랑의 존재였음을 깨달았다. 다림의 행동만으로 정원의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이 미장센..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5. 정원은 과거 속에 빠져 사는 인물이기도 한데,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면 함께 했던 지난 시절만을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미래형 대사는 친한 친구에게 술을 먹자고 주정부리는 것밖에 없다. 시한부 인생은 미래를 꿈꾸고 기약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원이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생각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늘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정원을 보고 문득 모든 게 다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모든 계획이 세워지는 것이니 말이다.

 

6.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에 대한 개연성이 실로 명확하지는 않다. 조각조각 사건의 나열들이 쌓여 큰 파동을 만들고 그들의 감정이 깊어진 게 보일 뿐이다. 이따금의 순간들에서 서로에게 빠져 있는/빠지게 되는  모먼트들도 보이긴 하지만, 그들의 연애사에서 극히 일부를 목격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듯이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잘 표현한 작품이지 않나 싶다.

 

7. 왜 나만 보면 웃어요? 라는 다림의 말. 정원은 웃음으로 슬픔을 감추고 살아오는 듯 했고 그래서 이 말을 여러번 곱씹었을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 그가 웃는 건 슬픔을 감춘다기 보다는 다림이 정말 좋아서 웃었을 것.

 

8. 마지막에 정원은 다림을 보지만 그 전에 구청 앞에 찾아갈 정도였음에도 실제로 마주할 수 있었을 때는 되려 그리워할 뿐 달려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행동의 의미는 마지막 나레이션에 담겨 있는 듯했다.

 

9. 장례식장에 간 그가 발인 후에도 엉엉 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도 죽으면 사람들이 저렇게 슬퍼해줄까 하는 생각을 했을까? 늘 죽음에 대해 상기하고 있는 사람이라니.. 나는 되려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말이 기억에 남았는데 말이다.

 

10. 자꾸만 <봄날은 간다>와 비교하게 되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이따금 누워있는 정원의 얼굴 클로즈업 씬과 같은 부분에서 조금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이십여 년 전의 영화이니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이러한 투박한 느낌이 예전 한국영화의 맛이 아닌가-

 

 

영화 정보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817

 

8월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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