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아트센터 기획프로그램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의  세 번째 작품인 <식사食事>를 보고 왔다.

관람 일시는 7월 5일 (일) 오후 3시 낮 공연 -

 

 

연극 <식사食事>는 윤한솔 연출 님을 비롯해 안데스, 이라영, 조문기 작가 님들이 함께 공동 창작, 출연한 작품이다.

 

사실 연출 님의 작품을 두 번 본 적이 있어서 믿고 예매를 하게 되었는데, 창작하신 네 분이 출연까지 하신다는 점에서 어떻게 풀어나가게 될지 궁금해서 빨리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러닝타임이 80분이라는 점에서 아주 부담없이 관람할 수 있다는 점도 선택하게 된 동기로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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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무대는 ㄷ자 모양의 조리 공간이다. ㄷ자 모양의 조리 공간에 관객은 바처럼 둘러 앉을 수 있고, 그 뒤로 객석이 있다. 그 조리 공간에서 네 명의 인물이 각각 자신의 요리를 하고 있다. 어떤 요리를 하고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와 식재료를 보고 있으면 괜히 알 것도 같다. 그리고 그들은 이따금 관객들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정시가 되고 공연이 시작되면 조도가 낮아지고 한 명씩 돌아가며 발화를 시작한다. 이 극장이 있기 전 어떤 공간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이나 노래도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천장에 달린 스크린을 통해 이미지가 제시되어 살을 붙인다. 이 스크린에선 각종 질문들도 등장하는데, 가령 식사란 무엇인가? 같은 것들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질문에 대한 답변 같기도 하고, 이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서 요리를 하는 내내 이들은 번갈아가며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로 와서 책을 낭독한다. <정치적인 식탁>, <헝거>, <일리아스> 같은 책들을 발췌해 읽으며 담론의 층위가 겹겹이 쌓인다. 작품을 준비하는 데 담긴 지난한 리서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렇게 낭독이 이어진 후에는 배경음악과 함께 점점 고조되어, 그들은 결국 한 끼 식사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공연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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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공연을 보고 나서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고, 꾸밈 없이 날 것인 듯 은근하게 극적이다"라는 한줄평을 떠올리게 되었다. 저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공동의 테이블에 한 끼 식사를 올리기 위해 저마다 맡은 요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라고 생각했고, 직업 배우가 아닌 이들이 관객과 대화하는 듯 리서치를 발표하는 듯 하면서도 음악과 요리하는 행위가 어우러져 고조되는 분위기가 상당히 극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산인문극장의 지난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먹는다는 행위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도 곱씹어볼 수 있었다. 특히 페미니즘, 비건 등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책 발췌 낭독을 통해 무대 위로 끌여들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본래 기대했던, 서사와 가상의 인물들이 존재하는 형태의 작품은 아니었으나 결코 가볍지 않았고, 오히려 더 내 일상과 밀접하게 느껴지면서, 이 작품만이 갖는 매력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반적인 형태의 연극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공연이란 무엇일까, 내 취향의 작품 형식이라는 건 뭘까 같은 고민에 도달하게 되었다. 일맥상통하는 세 작품을 연달아 보고 나니 어쩔 수 없이 비교하여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다. 같은 소재를 이렇게 저렇게 풀어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연극의 매력도 역시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곧바로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프로듀서 님의 진행으로 이어졌는데, 한 분씩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시고 이후 질의응답을 받게 되었다.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작품의 형태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갖춰졌는지, 연출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연출 님께서는 처음에는 미식에 대한 탐구를 하고 싶었는데, 모여 리서치를 하게 되고 작업 과정에서 발전되어 공연 하기 한 달 전 쯤에 이런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창작에 참여한 네 분이 출연하게 된 것도 한 달 여 전쯤 부터라고!

더욱이 이라영 작가님의 경우 <정치적인 식탁>을 쓰신 분인데 직업이 작가인 탓에 텍스트 리서치에 보다 책임감을 갖고 작업하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조문기 작가님 또한 유일하게 음악을 하시는 분이셔서 관련해서 책임감(이라고 쓰고 압박이라고 읽는다)을 갖게 되셨다고 한다. 음악의 경우 본래 밴드를 구상했다가 난잡해질 것을 고려해 그랜드피아노를 두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루즈해져서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테크노 음악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공연을 보면서 음악이 정말 찰떡이라고 느꼈는데,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다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안데스 작가님께서 공연 중 자신의 의상에 대해 남미에서 여성들이 작업복으로 입는다는 이야기를 하셨기에 다른 분들의 의상에 대한 에피소드가 궁금해져 나도 용기를 내어 질문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이라영 작가님께서는 평소 글 쓸 때 사용하는 팔토시를 착용한 것이고 모자는 안데스 작가님게 빌린 것이라고! 조문기 작가님도 마찬가지로 두른 앞치마?가 작업할 때 쓰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의상 외에도 다른 에피소드도 듣고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는데 정말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되어 더더 좋았던 관객과의 대화였다.

 

+관객과의 대화는 두산아트센터 팟캐스트에서 들을 수 있다.

 

 


 

> 공연 정보 및 예매 링크

+ 작업 과정, 조연출 노트 등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는 프로그램북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https://www.doosanartcenter.com/ko/performance/1445

 

[연극]식사(食事)

2020.06.30 ~ 2020.07.18 / Space111

www.doosanartcenter.com

 

> 연극 <식사>는 7월 18일까지 계속되며, 이 외에도 '푸드'를 주제로 한 강연이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에 두산아트센터 유튜브에 업로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