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의 Do;에디터로 운이 좋게 연극 <궁극의 맛> 프레스콜에 다녀왔다. 프레스콜은 처음 가보는 거라 긴장도 되었으나, 막상 가보니 일반 공연을 하는 것과 다름 없는 분위기여서 신기했다.

 

연극 <궁극의 맛>은  일곱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연극으로, 세 명의 작가 님들의 작업을 통해 하나의 극이 완성된 작품이다. 연출에는 신유청, 드라마터그로 윤성호 연출 님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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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삼각형이 겹겹이 쌓인 구조로 되어 있는데, 객석과 무대라고 할 게 없이 그냥 무대 위에 삼각형을 이루는 긴 바로 된 테이블들이 있고 거기에 의자가 있어 원하는 자리에 앉는 식이다. 단, 몇몇 자리에는 앉을 수 없다(극중 배우가 앉기도 하기 때문). 나는 그냥 직관적으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았는데, 괜찮은 자리에 앉았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이 마치고 질의응답에서 연출 님께서는 삼각형으로 배치한 이유가 사각형은 평화를 의미한다면 삼각형은 불완전함, 모서리, 날카로움 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고.

 

 

무의 시간

오프닝으로 참 적절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연출 님의 말대로 작품에 진입할 수 있는 긴 터널로 적절히 기능한 느낌. 대사들이 처음엔 그의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재소자의 딸이 보낸 편지였다. 엄마와 딸이 지닌 서사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게 될 재소자들의 당위성을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했다. 개개인 캐릭터들의 존재 이유를 한 명의 이야기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했다.

자정의 요리

솔직히 좀 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관객과 긴밀하게 소통하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진입하는 느낌이다. 관객들이 앉은 사이사이를 오고가면서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음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기도 하고. 그리고 라면과 문어라는 음식의 등장. 문어 반죽.. 참 재밌었다. 그리고 엔딩도 참 슬펐고.

선지해장국

권력으로 사람을 누르면서도 권력과 명예를 좇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나는 이 에피소드에서 보좌관 K 씨라는 인물보다 그가 보좌하던 국회의원이라는 인물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폭력적인 화술과 대사들을 이렇게 잘 구현해 내다니. 정치 풍자는 이렇게 하는 건가 싶었고.. 그는 왜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일까? K 씨는 왜 그런 일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일까?

파스타파리안

이 에피소드는 ㅋㅋㅋㅋ 보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왜 이런 에피소드가 이 사이에 등장해서 이렇게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건가, 이 에피소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떠올릴 새도 없이 ㅋㅋㅋㅋㅋ 너무 웃겨서 마스크 쓰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공동의 욕망이 종교적 의식으로 승화되어 유쾌하게 풀어냈다.

왕족발

전 에피소드에서 재소자 옷을 입은 ㅋㅋㅋㅋ 캐릭터가 이 에피소드에서는 털 옷을 입고 들어온다. 그리고 완벽하게 달라진 화술. (ㅠㅠ) 이 에피소드도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내용도 담겨서 불편함을 내내 초라하거니와, 가정폭력이라는 소재까지 담겨 있다. 그리고 족발이라는 음식까지. 프레스콜에서 족발이 대물림되는 손맛인 것과 동시에 폭력의 대물림을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해졌더랬다.

펑펑이 떡이 펑펑

이 에피소드는 마음이 몽글몽글 하고 그랬다. 내가 바로 앞에 앉아서 봐서 그런가.. 아주 고전적인 이야기 전달 방식이기도 하고.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떡을 만들어 먹고 있는 그 공간에 내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진짜 만든 떡을 옆에 앉은 관객에게 나눠준다. 나한테 주면 안 먹겠다고 해야 하나 왕왕 고민했는데 나한텐 안 줬다(ㅋㅋ).

마지막 화룡점정의 에피소드. 프레스콜에서 연출 님이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두는 건 자연스러웠다고 하셨는데 보고 나면 자연스레 공감이 갈 것이다. (이 뒤에 어느 작품이 올 수 있겠는가) 구토하는 사운드가 너무 커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관객이 있을 수도 있겠다. 다행히 내가 앉은 자리에선 구토하는 공간이 잘 안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심화되는 갈등 구조가 참 볼만했다. 지금 학교 수업에서 만들고 있는 작품이 이런 식으로 갈등을 쌓는 것인데 많이 배운 느낌.

 

 

 

전체적으로 느낀 점을 적어보자면,

1. 결코 가볍지 않은 담론과 소재를 이토록 유쾌하게 끌어낼 수 있다니. 가볍지 않은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걸 선호하는 나에게 참 취향을 저격하는 작품이었다.

2. 솔직히 무슨 생각을 더 했다기 보다는 두 시간 내내 즐겁게 하지만 심각하게 볼 수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심란한 마음으로 나오는 게 연극의 재미가 아닌가!

3. 삼각형의 불완전함, 그 속에 우리가 있었다: 삼각형의 무대 구성 위에 관객 또한 앉아있음으로 인해서 관객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함과 동시에, 극 중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임을 느끼게 하고, 동시에 재소자들이라는 캐릭터 설정들은 우리가 사회적 약자들을 관조해온 것은 아닌지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비워냈으니 다시 채워야지: 마지막 에피소드의 마지막 대사. 극이 끝나고 우리가 나아갈 현실도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고 비워내길 반복하는 일상이기에 말이다.

 


 

연극 <궁극의 맛>은 6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 111에서 진행된다.

https://www.doosanartcenter.com/ko/performance/1444

 

[연극]궁극의 맛

2020.06.02 ~ 2020.06.20 / Space111

www.doosanartcen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