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공주들>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2020년 6월 12일 오후 8시 관람
지난달에 예매해서 보기를 기다리던 연극 <공주들>을 드디어 관람했다! 지난해였던가, 이 극장에서 티켓 일을 하면서 공연이 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나는 이 공연에 배치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공연이 매진되었다, 보러 많이 온다 등의 이야기는 그때도 들었던 거 같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매진된 연극 <공주들>. 코로나19의 여파로 한 칸씩 띄어앉기를 시행하면서 판매할 수 있는 좌석도 줄어든데다, 강화된 수도권 방역조치로 인해 본래 계획된 회차보다 축소하여 공연이 진행되었다.
공연장에 들어갈 때 체온을 잰 다음, 티켓을 수령하고, 어느 구멍으로 들어갈지 지정을 받으면 된다. 40분부터 지하로 내려가는데, 이때 배우들이 관객들을 줄 세워 데리고 내려간다. 객석 내부로 들어갈 때도 배우의 멘트가 끊이지 않고, 들어가서도 무대 위에 서있는 배우들이 우리를 맞이해준다. 실로 독특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우선 극 자체의 짜임새와 완성도에 대하여 감탄하면서 봤더랬다. 속절없이 쏟아지는 대사와 티키타카를 참 오랜만에 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밀도가 높고 튼튼하여 몰입도가 매우 높은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13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극을 이끌어가면서 관객들이 계속 집중하게 하는 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주들>은 현실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사회비판적인 극이다. 한 할머니의 일생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공주 100년사'를 들려준다. 이 작품 안에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부터 위계와 권력, 빈익빈부익부 같은 온갖 요소들이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열 두 명의 배우들이 저마다 각자의 전형성을 지닌 인물들로 등장해서 대한민국 현실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을 무대 위로 이끌어낸다.
그리고 최근의 현실까지 반영한다. n번방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도 있는데, 나는 이 때 너무 적나라하여 배우의 연기를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이게 내가 겪고 있는 불안이자 현실이기에, 차마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외면하고 싶을 만큼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장면에서는 빔 프로젝터를 통해 뉴스들이 흘러 나오는데, 약 10여 년 간 성폭력 등과 관련된 뉴스들이다.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중에 내가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무력감이 들었다. 지난 십여 년간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무엇일까?
손녀 공주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그리고 이 사회가 문제인거라고. 그리고 같은 여성이더라도, 모두가 같은 입장과 상황이 아니기에 또 다를 수 있음을 다시금 느꼈다. 더욱 많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은 어떤 해결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실을 그냥 모두 마구마구 보여준다. 그리고 결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할머니를 위하는 "척"해왔던 이의 말을 끝으로 작품은 끝이 난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2020년 다음은 있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 엉망진창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묻는다면 이 작품을 보라고 말할 것이다. 세상을 마냥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 아직도 꾸밈을 놓지 못하는 사람, 가부장적 사고에 갇혀 아직도 구시대적 성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보라고 할 것이다. 왜냐면 이 작품 만큼 모든 문제점을 떠먹여주는 작품도 없기 때문이다. 그 많은 걸 떠먹는 순간, 불쾌하고 불편해진다. 이미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도, 이걸 보면 더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이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관객에게 주고자 하는 목표가 아닐까 생각했다.
http://theater.arko.or.kr/Pages/Perf/Detail/Detail.aspx?IdPerf=257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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