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파랑 콘텐츠에서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명 작가 바바라 크루거의 개인전 <BARBARA KRUGER: FOREVER>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사실 최근에 읽은 책 중 하나인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의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라는 책에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이 언급되어 있었다. 인터넷으로 작품을 검색해보면서 그 작업들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던 중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아모레퍼시픽의 본사가 용산에 새로 지어지면서 미술관도 새로이 열려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계기들로 인해 지난 9월 19일 목요일 오후, 미술관에 방문했다.
* 미술잡지 ‘미술세계’에서도 올해 하반기 사람들의 이목을 끈 전시로 이 전시를 꼽은 바 있고, 또다른 미술잡지 ‘월간미술’의 8월호 표지 또한 이 전시다.
*이번 전시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용산 신축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라고 한다.
*리플렛에 따르면 바바라 크루거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바바라 크루거는 미국의 개념미술가로,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치한 광고 형식의 작업들로 잘 알려져 있다. 눈길을 사로잡는 상징적 서체와 간결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는 동시대 사회의 메커니즘과 대중매체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권력, 욕망, 소비주의, 젠더, 계급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사실 신용산역 근처는 처음 와보는 초행길이라 모든 게 낯설어 걱정했지만, 바로 대로변에 사옥이 위치하고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서도 안내데스크에 여쭤보면 미술관 위치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신다. (사옥과 미술관을 구별하는 문도 경호 분들이 열고 닫아주신다 …) 미리 할인 티켓을 알아보지 않고 즉흥적으로 온 탓에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했고, 성인 정가 13,000원이었다. 사진 속에 보이는 빨간색의 네임택 같은 것이 티켓이다. 티켓 뒤로 보이는 큰 종이가 리플렛인데, 전시에 대한 전체적인 소개 페이퍼 외에도 미술관을 소개하는 페이퍼와 AP Lab(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다)을 소개하는 페이퍼가 티켓 부스에 구비되어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면 전시장이 펼쳐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넓지 않았다. 덧붙여 방문한 오후 한 시반 정도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나올 때는 사람이 꽤 들어오고 있었지만) 매우 고요했던 게 기억난다.
*검색 결과 할인 티켓이나 인터넷 예매는 제공하지 않는 듯하다.
*지하철과 미술관(사옥)을 연결하는 통로에도 작품이 있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간 탓에 통로를 지나가지는 못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지하 연결통로를 가보고 싶다.
*전시장 한 공간에 유독 기둥이 많았다. 기둥은 관람에 꽤나 방해가 되는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 아모레퍼시픽그룹 신본사는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작품이라고 한다.
*사옥에는 공공미술 작품이 두 점 설치되어 있다. 건물 앞에 설치되어 있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Overdeepening>과 5층 정원에 있는 레오 빌라리얼의 <Infinite Bloom>이 그것이다.
*미술관 지하에서 올라와 1층 건너편에 있는 AP Lab에는 이번 전시의 도록이 구비되어 있다. AP Lab은 전세계 유명 비엔날레의 도록부터 국내외 유명 미술관들의 전시 도록, 관련 서적 등이 가득하다. 이곳은 아모레퍼시픽 뷰티포인트 회원이라면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서적들이 가득하니 전시를 관람하러 가거나 이곳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AP Lab만이라도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전시장 입구를 비롯해 여러 작품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첫번째 작품은 <Untitled(Forever)>였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인용해 텍스트를 배치하여 한 공간 전체가 텍스트로 가득한데, 처음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의도는 아카이브에 있는 영상을 시청하면 잘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입장부터 압도적인 분위기, 한 작품만으로도 작가의 지향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점,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인용한 텍스트의 내용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의 의도 등이다.
*이 외에도 인터넷에서 봤던 <Face it!>이나 <Untitled(Your comfort is my silence)> 같은 작품들도 기억이 난다. 그러나 작업의 특성상 영상 전시장의 벽에 걸려있는 모습보다는 인터넷이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작품을 보게 될 때 다가오는 느낌이 더 강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도 한 작품이 있는데, 전시 공간의 네 면 각각에 영상이 나오고 가운데에 앉아 모두를 보는 방식이라 독특한 경험이었다.
*1층 굿즈샵 앞의 벽에 있는 작품 <충분하면 만족하라>와 전시장 두 번째 공간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제발 웃어 제발 울어> 같은 작품들도 인상적이었으나 영어로 된 텍스트가 한글로 되어 있는 텍스트로 바뀌어 전시되었을 때의 느낌이란 …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영어가 쓰인 작품이나 티셔츠 같은 것들을 마주했을 때의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덧붙여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불온한 데이터>에서 본 수퍼 플렉스의 작품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도 기억이 났다.
사실 국공립 미술관에서 보던 전시들과 달리 가격이 높은 편이었고 그런 탓에 티켓 가격 대비 만족도를 우선적으로 떠올리며 전시를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위에 언급했듯이 멋진 작품들이나 인상적인 지점도 많았지만 만족이 완전히 되지는 않은 느낌이다. 작품의 수나 관람 소요시간으로 만족도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총 작품의 수는 16점 정도였고 천천히 관람했음에도 다 보는 데는 1시간 반도 걸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작가의 작품들을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돈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던 이유는, 작품에서 오는 충격과 감동 같은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또는 기대치가 너무 높았어서? 공연이 아닌 전시를 관람하면서 지불한 대가와 그에 상응하는 가치에 대해 고민해본 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를 봐야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소비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고, 여성주의 관점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외치며 각성하도록 한다. 더욱이 다른 작가들에 비해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은 미술사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텍스트를 유심히 읽고 왜 이 이미지를 사용했는지 잘 들여다보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건지 느껴진다. 작가 본인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몇 년 사이 미술과 문화에 대해 배우면서 점점 사회와 문화의 층위에 서서히 편입되고 그러한 구별을 짓는 것에 본의 아니게 희열을 느끼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관념과 인식과 대비되는 작업들을 꾸준히 해온 작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작가가 동시대 사회를 비판하는 작업들을 해온다고 해도 그러한 매체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이 다소 권위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 출신의 작가가 미디어(광고)가 가진 힘을 잘 알고 자신의 작업에 활용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적힌 명령형의 텍스트들을 읽다보면 문득 ‘이 사람이 뭔데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건데?’하는 의문에 부딪힌다(물론 작가가 건네는 메시지들 중에는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들도 많다). 이런 지점에서 예술가라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위치하는 지위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의 연관성 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 전시였다.
아카이브에 있는 영상에 작가의 나레이션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권력과 가치에 대한 이슈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된다.” 이 말을 보면 바바라 크루거는 어떤 작업을 해야 이슈가 되고 유명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아카이브에 있는 작업들 중 킴 카다시안을 표지로 한 매거진과의 작업을 보면, 작가 스스로도 동시대 사회의 매커니즘과 대중매체 속에서 끊임없이 소비문화와 권력, 계층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현대사회가 지닌 욕망과 권력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자신 스스로 그런 작업들을 해오고 있는 것에 대해 작가는 스스로의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Questions
*방문객들 중에는 다양한 연령층도 있었지만 외국인들의 수가 꽤 많았다. 공간의 위치가 용산이어서 그런 것일까?
*이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은 ‘힙스터’라고 불릴 수 있는가? 왜 셀럽들이 이 전시를 많이 관람했는가? 전시를 자주 관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무엇인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전시는, 혹은 이번 바바라 크루거의 전시가 할인을 제공하지 않는 이유는?
이번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전시 <BARBARA KRUGER: FOREVER>는 올해 12월 29일까지 계속된다. 단순히 셀럽들이 많이 방문한 전시라고 해서 이곳에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사회에 대한 고찰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예술로써 풀어낸 방식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전시를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 imda_young 2019
기간 2019.06.27. (목) ~ 2019.12.29. (일)
장소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주최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요금
- 성인(만 19세 이상) : 13,000원
- 학생(만 7~18세),만 65세 이상 : 9,000원
- 어린이(만 3~6세),국가유공자,장애인 :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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