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느덧 여름도 절반이 지나갔네요. 요즘은 밖을 나가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듯 해서 사우나를 걷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요. 불쾌지수도 덩달아 높아져 옆 사람과 팔짱을 끼는 것도 상상하지 못하는 이런 계절에도 태양보다도 뜨겁게 사랑 이야기를 노래하는 공연이 하나 있습니다. 무더운 7월, 이달의 공지사항은 바로
Every Story is Love Story
뮤지컬 <아이다>
👀 세상이 멈추었고, 그녀가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정말 잘 지은 수식어라고 생각합니다. 딱 이번 시즌의 아이다 같달까요? 이 시대 최고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때도 느꼈지만, 신시 컴퍼니는 메인 수식어의 포인트를 정말 잘 잡는 듯합니다. 사실 <아이다>는 19-20년에 걸쳐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마지막 공연임을 알린 후 이후엔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의 새로운 버전으로 찾아오겠다고 했었는데요. 코로나로 인하여 디즈니의 NEW 아이다 북미투어와 독일공연이 밀린 덕에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다시 한번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버전의 아이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부산 지방공연이 취소되는 바람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관객들에게 다시 돌아왔던 <아이다>는 그렇게 5월부터 시작한 전 세계의 마지막 아이다 공연이 바로 내일, 7일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립니다.
<아이다>는 어린이용 책으로 만들어진 <AIDA>에서 영감을 얻어 원래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려고 했지만, 작곡을 맡은 엘튼 존의 의견으로 뮤지컬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먼저 스토리부터 살펴보자면, 막이 오르면 한 현대 박물관의 이집트관에서 신기한 듯 전시품을 구경하는 한 여자와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는 한 남자가 보입니다. 어떤 관계가 있을지 궁금할 찰나 그들 사이 전시관 속 고대 왕국의 여왕 암네리스가 관객들을 전쟁과 사랑이 모두 치열했던 이집트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이집트의 사령관인 라다메스는 나일강에서 고향으로 향하던 중 누비아 포로 중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에게 계속 반항하는 용맹하고 고귀한 아이다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의 약혼녀인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에게 시녀로 선물합니다. 한편, 누비아 출신 하인 메렙은 한눈에 아이다가 누비아 공주임을 알아보고 아이다는 자신의 신분을 감춰주기를 부탁하지만, 소문이 빨라 어느새 이집트의 누비아 백성들은 공주님이 포로로 잡혀있다는 걸 다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를 전혀 알 리 없는 라다메스는 아이다에게 점점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백성들을 구원해야 할 아이다 또한 공주의 신분임에도 적국의 장군을 사랑하게 된 자신의 처지에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데요.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암네리스까지 이 셋의 엉킨 사랑 이야기는 어떻게 풀려나갈까요.
🌳 신의 사랑 누비아 내 조국 영원하리
아이다의 고향 누비아는 어떤 곳일까요? 고대 이집트는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오늘날의 아스완 지역까지입니다. 그리고 그 바로 밑, 이집트의 남쪽 경계부터 누비아가 시작됩니다. 나일강을 따라 제1 급류부터 제4 급류와 제5 급류 사이가 누비아 지역인데, 극 중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말하는 새로운 세상 지평선 끝처럼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도 누비아의 최남단은 세상의 끝으로 인식되었다고 합니다. 공연이 진행됨에 따라 강물에 비치는 노을이며, 울창한 나무들이 곳곳에 있는 풍경을 그린 배경과 조명이 뮤지컬 <아이다>의 묘미인데요. 실제로도 아름다움을 잔뜩 품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있지만, 조세르가 누비아를 정복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누비아는 강을 끼고 있는 만큼 이집트에서 소비되던 이국적인 물품의 생산지이자 중간 교역로이자 한편에서 고대 이집트어로 금을 ‘네부’로 읽기에 누비아의 어원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할 만큼 대규모 금광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잡아 온 노예들을 금광으로 보내려고 했으며, 금광 속에서 수은을 캐내 파라오의 독살에도 쓰려고 하는 등 금광의 비중이 큰데, 실제로도 이집트가 굳건하게 세력을 이어나간 이유 중 하나가 누비아의 대규모 금광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고향 땅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세력 확장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사실이 참 그렇네요.
👗 내 드레스가 바로 또 다른 나
극 중에서 암네리스 공주의 관심사는 오로지 “드레스”인데요. 자신을 치장하는 것들에만 정신이 빼앗긴 철없는 공주를 나타내는 부분이기도 하죠. 이런 공주에게 아이다는 시녀로써 자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 여왕님의 시녀로부터 전해 내려온 바느질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네페르티티’ 여왕인데요. 고대 이집트어로 ‘아름다운 여자가 왔다’는 뜻을 지닌 이름에 걸맞게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고대 이집트 최고 미인으로 꼽혔다고 합니다. 그러니 암네리스 공주가 안 넘어갈 수 없겠죠? 네페르티티는 제 18왕조 파라오 아크나톤의 아내로, 남편 아크나톤을 도와 다신교 체제에서 태양신을 섬기는 유일신 체제로의 종교혁명을 진행한 카리스마 넘치는 왕비로 기록돼 있습니다. 왕비이기에 벽화, 조각 등 그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많이 훼손되어 가장 유명한 ‘네페르티티의 흉상’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석회석으로 만들어졌고, 높이는 약 48cm이며 염료로 색칠되었는데, 품위 있는 인상의 이목구비를 담아낸 게 특징입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왼쪽 눈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는 점인데, 처음 유물을 발굴한 독일 고고학자들도 왼쪽 눈에 1,000파운드의 상금을 걸었지만 결국 아무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아마르나 시대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데요. 흉상을 발굴했던 독일 고고학자들이 독일로 반출하고 싶어 이집트 통관을 속여 가져왔을 만큼의 (..) 아름다움이라고 합니다. 네페르티티의 흉상은 현재 독일 베를린의 노이에스 박물관에 전시되어있습니다.
✊🏻 이시스 신의 딸로서 선고하노라
뮤지컬 <아이다>에서 지켜봐야 할 포인트 중 하나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만이 전부였던 암네리스가 사랑을 겪으며 한 나라의 통치자로 성장해 나간다는 점인데요. 이집트를 반역하고 자신과의 약혼을 져버린 아이다와 라다메스에게 둘이 같이 무덤에 묻게 하라는 형을 선고하는 장면은 이 성장의 절정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형을 선고할 때 ‘이시스 신의 딸로서 선고하노라’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앞서서 파라오도 ‘이시스 신의 아들’이라고 본인을 칭하곤 합니다. 이시스 신은 누구일까요? 이시스는 고대 이집트 신화 속 여신으로 고대 이집트를 넘어 그리스, 로마 전역에서 숭배되었습니다. 남편 오시리스와 더불어 이집트 문명을 세웠고, 농업과 의술, 바느질, 음악 등을 가르쳤다고 나와 있는데요.
신화에 따르면 남편 오시리스가 그의 동생 세트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남편을 잃은 이시스는 강에 버려진 남편의 시신을 찾아다니다 시리아의 한 도시에서 신비로운 기둥을 발견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그 기둥이 남편의 관에서 자라난 나무로 만들어진 기둥이었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고 남편의 시신을 찾아옵니다. 이시스가 시신을 끌어안은 채 오열을 하니 임신을 하게 되었고 태어난 아들이 호루스입니다.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이시스에게 세트는 자신의 탐욕을 멈추지 않고 이시스를 자신의 왕비로 삼고 싶어 위협을 가했으며 오시리스의 시신을 14조각으로 찢어 흩어서 버려두기까지 합니다. 또다시 남편을 잃어버린 이시스는 슬픔에 잠겼지만, 여동생 네프티스와 아누비스를 동행해 시체 조각을 모두 되찾아 마법으로 미라로 만들었고, 그사이 아들 호루스가 세트와의 격렬한 전투 끝에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오시리스를 부활시켰다고 합니다. 직접 읽어보니 <아이다>를 연기한 한 배우가 이시스의 신화가 마음이 아프다고 했었던 게 생각이 나네요. 이시스는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고대 이집트인에게는 어머니를 상징했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상징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죠. 바로 호루스의 눈인데요. 와제트의 눈이라고도 불립니다. 신화 속 오시리스를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호루스가 제물로 자신의 왼쪽 눈을 바치게 되는데요. 이 눈은 적군을 보는 투시안적인 눈을 상징하기도 하며 건강과 안전을 위한 부적으로 팬던트에 주로 장식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다> 배경에도 거대한 호루스의 눈이 있는데, ‘부전자전’에서 호루스의 눈동자가 빨개지던 것도 생각나고, 지구를 담은 눈동자, 무덤 앞에서 재회한 아이다와 암네리스의 환생을 담은 눈동자가 각각 생각이 납니다.
🌍 이 여정도 이 얘기도 이젠 모두 끝났네
제가 <아이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현대 박물관의 전시로 시작해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오는 수미상관 구조인데요. 전시관 속에서 암네리스가 걸어 나오는 게 마치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숨겨진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고대의 무덤을 보고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환생이 다시 그 앞에서 재회하며 끝난다는 점도 뭉클해지는 지점이라 여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조가 뮤지컬에서 추가된 구성이란 걸 아시나요? 먼저 만들어진 오페라 <아이다>는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지 않고 딱 고대 이집트의 장면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오페라와 뮤지컬은 여러 차이점이 있는데요. 몇 가지 더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가장 놀란 건 인물들의 성격과 관계입니다. 오페라의 아이다는 암네리스를 두려워하고 경계하며 조국보다 사랑이 우선적이라 시녀의 신분으로 라다메스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인물이지만, 뮤지컬의 아이다는 같은 공주로 암네리스를 친구처럼 생각하고 옆에서 보살펴줍니다. 노예로 잡혀 왔을 때부터 군인의 칼을 뺏어 협박할 만큼 강인하고 용감하며, 조국애도 강해 국민을 사랑합니다. 그만큼 적국의 장군 라다메스와의 사랑 그리고 애국심 사이에서의 갈등이 주요 감정선을 이끌어 가죠. 라다메스도 오페라에선 다소 소극적이라 새로운 나라로의 모험도 두려워하고 처음부터 아이다를 사랑해서 암네리스에게 이를 들킬까 두려워하는 쪽이라면 뮤지컬에선 모험광으로 등장해 결혼보다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아이다의 남들과는 다른 점(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에 이끌려 점차 사랑으로 변해 암네리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아이다에게만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암네리스는 셋 중에선 그나마 차이가 없다지만 오페라에선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관계를 처음부터 눈치채고 아이다를 미워하고 처형을 내린 후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밀고했다는 죄책감으로 슬퍼하지만, 뮤지컬의 암네리스는 순수한 공주라 결혼식 전날에야 둘의 관계를 알아채고 끝까지 아이다를 친구처럼 생각합니다. 배신한 사랑이지만 그 사랑으로 더욱 성장하여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지켜나가는 여왕이 된 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입니다. 두 장르의 인물들을 비교해봤을 때, 뮤지컬의 인물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의 입장을 다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넘어 단순한 치정 싸움 이야기가 아닌 사랑의 힘, 이별로 인한 성숙 등 인간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세 명의 사랑 이야기에 담았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듭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또, 뮤지컬로 넘어오면서 주변 인물들을 추가시켜 이야기도 더욱 매끄럽게 이어졌습니다. 누비아인이지만 라다메스의 하인인 메렙과 아이다 대신 죽음을 맞이하는 네헤브카 그리고 그를 추앙하는 누비아 백성들, 모든 이들을 갈등으로 밀어 넣는 라다메스의 아버지 조세르까지 주연 3명보다는 비중이 작을지라도 이들이 있기에 극이 더 풍성해져서 이젠 없으면 허전할 것 같은 역할들입니다. 특히 신의 사랑 누비아, 댄스 오브 더 로브 등 아이다와 누비아 백성들이 함께 부르는 넘버에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들은 현장에서 볼 때마다 입이 벌어집니다. 앙상블들 짱!
이번 프로덕션의 아이다는 이렇게 막을 내리지만, 인종 문제나 구시대적 인물의 성격 등 나름의 아쉬운 점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겨났기에 빠른 시일 내에 이런 부분들을 재정비하고 또 다른 모습의 아이다로 만나볼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럼 이번 달 공지사항은 여기까지고요. 대신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공연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공지사항'은 언제나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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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awa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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