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태’, 본래의 모습이란 말로 근본 본 자에 모습 태자를 씁니다. 인류 본래의 근원적 아름다움을 탐구한다는 뜻을 지녔으며 안도 타다오가 건축을 맡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총 5관의 건물 중 1관과 2관의 건축을 안도 타다오가 맡았습니다. 안도는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본태박물관의 건축에 역시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 기법이란 별도의 마감재를 사용하지 않아 콘크리트의 물리적 특성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마감법입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제주도에 콘크리트라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편견을 깨는 재발견의 기회가 될 겁니다. 본태박물관은 밖에서 바라볼 때와 안에서 바라볼 때의 시야가 굉장히 다릅니다. 박물관 바깥에서 박물관을 바라보면 콘크리트의 묵직한 물성이 도드라집니다. 언뜻 견고한 요새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박물관 안으로 들어와서 밖을 바라보면, 바깥에서 봤던 것과 전혀 다른 여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빽빽하게 건물을 감싸고 있던 콘크리트는 사실은 각자의 공간을 유지하며 중첩되었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사이로는 끝없이 펼쳐진 제주도의 자연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별도의 마감을 하지 않은 노출 콘크리트가 오히려 깔끔하게 다가옵니다. 건축의 크기가 거대한 데에 비해 부담스럽거나 위압적인 분위기를 주지 않는 이유입니다. 단순하게 떨어지는 콘크리트의 물성이 주변 풍경과 수수하게 어우러집니다. 건축가의 철저한 계산 아래 펼쳐진 제주도의 경치는 박물관이 낸 자연 창처럼 기능합니다.
1관과 2관, 두 건물 사이로는 물이 흐르는 벽과 전통 담장이 위치해 있습니다. 물은 계곡처럼 단차가 있는 벽을 타고 유유히 흐릅니다. 이는 박물관이 지어진 경사진 지형의 특성을 살린 건축이기도 합니다. 전통공예를 전시하는 1관과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2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려는 박물관의 철학에 있어 두 관 사이의 연계를 주는 일은 차별점을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핵심적인 요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지가 경사지다는 것은 건축 의도를 실현하는 데에 있어 장애물과도 같았을 겁니다. 으레 그렇듯 땅을 깎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으나 안도는 지형의 경사를 없애는 대신 1관과 2관을 각각 삼각과 긴 사각 마당을 가진 두 공간으로 구성했고, 공간 사이의 높이차를 물이 흐르는 벽을 이용해 연결했습니다. 이를 두고 박물관은 “L자형의 두 건물이 동질감을 가지면서도 단차를 두고 만나 공간감을 연출한다”고 말합니다. 1
박물관 앞으로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제주에서 자연 연못이나 호수를 찾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2 이렇게 독특한 자연환경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안도의 철학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단차를 타고 흐른 물이 모이는 인공 냇물이 마치 박물관 바깥의 연못이 박물관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냇물은 잔잔하게 흐르며 두 건물을 이어줍니다. 냇물과 콘크리트 건축재 너머로는 전통 담장이 있습니다. 기와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우직한 담장이요. 이를 배경으로는 빛과 물, 구름, 산 등 제주도의 자연이 자리합니다. 콘크리트와 담장, 자연의 조화가 상상이 가시나요? 절대로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각기 다른 물성들이 모여 만들어낸 풍경은 가히 장관입니다.
처음에는 이 조합이 산만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건축가였다면 자연과 어울리는 건축재, 기법을 사용했을 거라며 방구석 일침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진행하며 제게 남은 것은 제 오만을 확인하는 일뿐이었습니다. 솜사탕과 수세미처럼 전혀 다른 물성의 만남이지만, 그들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는 어쩌면 모두가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뭔가 가하거나 빼려고 하지 않고 각자 본연의 멋으로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요. 만약 어떤 건축가가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의도적으로 자연과 어울릴 법한 건축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감흥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무언가에 어울릴 무언가. 이런 것을 규정하기보다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하나의 공간이 되고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자연과 전통, 현대와 예술가. 그들의 우발적인 듯한 만남이 계획된 백 번의 만남보다 훨씬 강렬합니다. 건축이란 어쩌면 각자의 본태로 만날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요? 근본적인 모습이라고 해서 꼭 자연 친화적인 외양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콘크리트는 거친 모습이 자신의 본태이고, 전통담장은 고즈넉한 모습이, 예술가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본태입니다. 아마도 본태박물관의 작명에는 이런 깨우침을 주려는 뜻이 담긴 것 같습니다.
이런 철학은 전시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박물관에는 민속 박물관에서 주로 볼 수 있던 전통 공예, 전통 상례 문화와 쿠사마 야요이, 현대미술이 한 데 모여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죠. 앞서 봤던 담장과 콘크리트의 조화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전시장 내부에는 특이한 공간이 하나 있는데, 바로 현대미술관에 위치한 ‘명상의 방’입니다. 2관의 작품을 감상한 뒤 좁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면 명상의 방에 도달합니다. 명상의 방은 설립자 이행자 씨가 평소 명상을 즐기는 안도 타다오를 위해 마련한 공간으로 지나치게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에 천창과 나, 오직 둘만이 있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미술관 내부에 과감히 천창을 낸 건축이 생소했지만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박물관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천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의 본태,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내면의 본태에 집중하는 개인. ‘본태’로의 회귀 말입니다.
‘Art-chitecture’를 연재하기 전에는 미술관·박물관이 전시하는 전시의 내용과 건축 사이에 큰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시는 전시고, 건축은 아름다운 건물을 만드는 것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미술관이 지어질 수 있는 곳은 수천 년도 전에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운명처럼요.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 유명한 건축가가 건축을 맡은 곳으로요. 하지만 건축은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 근사한 구조물을 짓는 게 아닙니다. 전시를 전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는 태도입니다. 본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때 비로소 건축이 그것을 구현할 수 있으니까요. 건축은 무엇을 드러내는 과정일까요? 혹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상 ‘Art-chitecture’의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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