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 탄신일을 기념으로 맞이한 휴강수업에서 교수님은 영화 감상 과제를 남기셨다. 딱히 필수로 보지는 않아도 된다는 뉘앙스였지만 이것마저 보지 않는다면 열정 없는 대학생으로 낙인찍힐 것만 같은 부담감이 ‘오랜만에’ 들었다. <댄싱 베토벤>은 모리스 베자르의 <베토벤 교향곡 제 9번 ‘합창’>의 초연 50주년을 맞이하여 이스라엘 오케스트라, 발레 로잔, 도쿄 발레단이 모여 9개월에 걸친 작업 과정을 남긴 다큐멘터리이다. 모리스 베자르, 베토벤, 나아가 이 작품의 의미를 재해석하기 위해 모인 모든 무용수들과 스태프들의 예술 철학을 엿볼 수 있었는데, 가장 큰 주제의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보자면, ‘모든 인류는 형제다.’ 정도로 표현해볼 수 있겠다.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느껴볼 수 있었고, 무용으로서 승화한 그들의 이야기가 곧 예술의 목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싸우고 부딪히는 지저분한 모습, 사랑하는 모습,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모리스 베자르의 안무에 담겨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감독 아란차 아기레는 모리스 베자르의 발레단, 스위스 발레 로잔에 대해 8년이라는 시간동안의 취재를 거쳐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8년이라는 긴 시간을 쏟아 만들어낸 창작물을 싫어하고 싶지 않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부담스러웠던 지점은 모든 인간을 향한 인류애에 대해 말하고 있음에도 부르주아들이 지향하는 그 어딘가의 예술로 느껴진 것이다. 한 작품을 향해 9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달려가며 수없이 흘린 무용수들의 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무대 뒤 스태프들, 그 모든 사람들이 모여 인류의 <합창>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명성 있는 예술, 인간의 의식을 고양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수천년 동안 지식인들이 고민해온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경외감이 들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경외감을 갖도록 만드는 위계와 범접하기 힘든 결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모든 사람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나, 다큐멘터리 속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권위와 명예와 떼어놓고 볼 수가 없었다.
한 가지 예시로, 로잔 발레단의 무용수 카티야가 나온 부분을 들 수 있다. <합창>의 가장 유력한 여자 솔로 후보였던 카티야가 같은 발레단의 다른 무용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이다. 임신으로 인해 솔로를 맡을 기회는 다른 무용수에게 전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 대형 프로젝트에서 카티야의 남편은 계속해서 공연을 진행하기 위해 도쿄로 가며 카티야는 남겨진다. 이 사건이 다큐멘터리의 중심 줄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예술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감동을 작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선택의 자유는 본인에게 있는 것이지만, 이런 상황을 본인의 선택, 무용수와 여성의 어떤 숙명쯤으로 포장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9개월의 연습기간, 9번 교향곡, 아이가 만들어지는 9개월의 기간처럼 말이죠.’ 뭐 이런 나레이션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모리스 베자르나 베토벤의 철학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거장의 작품을 대규모 협업을 통해 다시 무대로 올리는 과정을 담는 데 있기에 이러한 점을 제외하면, 불편을 크게 느낀 점은 없다. 또한 전개 과정에서 이 프로젝트의 의의가 쉽게 이해되고, 감동을 자아내기도 하기 때문에 무난하게 볼 수 있었다.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도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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