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처럼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찍어내며 일상을 보내던 와중, 언니의 추천으로 엄마와 함께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본인이 보내는 삶에 얼마나 권태로움을 느끼던지간에 어떤 식으로든 삶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편집되고 다듬어진 사건들이 아니라, 일분 일초의 연속일 뿐이다. 이 점이 개인의 삶을 보잘 것 없는 것처럼, 쓸모 없고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만드는게 아닌가. 고정관념과 실제로 일어나는 삶 사이 괴리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전쟁을 소재로 삼는 (혹은 전쟁에 준 할만큼 큰 사건을 다룬)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전쟁은 역사 속에서 엄청난 희생자를 남겼고, 일반인들에게도 피해와 상처를 주었지만, 영화가 비추는 인물들이 전쟁의 일부분만을 보여주거나, 인물들을 보다 극적으로 연출하며 주제의식을 확대하는데, 이 점이 나에겐 너무 불편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2008년 인도 뭄바이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을 스크린에 담았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테러조직 ‘라슈카레 타이바’는 뭄바이로 밀입국하여, 카페, 기차 역 등 사람이 밀집되는 공간을 대상으로 테러를 진행한다. 수류탄, 기관총들을 이용해서 일반인들을 사살했고, 엘리트들과 고위계층이 모이는 타지마할 호텔에서 테러가 일어난다. 당시 뭄바이의 경찰조직은 대규모 테러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호텔 투숙객들이 구조되기까지는 59시간이 걸렸다. 위와 같이 내가 건조하게 나열한 일련의 사건은 이 테러의 끔찍함과 고통을 전달하지 못한다. 시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이 담겨있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가 기사를 통해, 실시간 검색어를 통해, 트위터를 통해 만나는 텍스트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따라서 <호텔 뭄바이>가 인상깊었던 점은 영화의 연출이 가진 힘을 다시금 느껴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비유에 빗댄 간접적인 표현과 직관적인 전달 두 방법의 중간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로써 뭄바이 테러사건에 대해 나열한 몇 줄의 설명이 생명력을 얻고,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한다.
이 영화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느껴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일상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던, 호텔의 직원들이 주인공이었다는 점이다. 전세계에서 온 지위 높은 투숙객들, 억울한 죽음을 당한 배낭 여행객, 테러리스트까지 이 영화는 다양한 인물을 다루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호텔 직원들이 있다. 실제로 사건 당시 투숙객들을 안정시키고, 안전한 대피로를 확보하기위해 최선을 다한 직원들이 호텔에서 희생된 수의 절반을 차지한다. 용감하고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 직원들과 대비되는 이기적인 몇몇 투숙객의 면모들, 모순된 테러리스트의 모습은 인간이 나약한 존재가 될 수도, 강하고 용감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테러 사건이었던 뭄바이 테러에 대해 차갑게 지켜보지도, 마냥 따뜻한 눈길로 바라만 보기도 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로, 섬세하면서 뛰어난 전달력을 가진 상징요소를 사용해, 그저 그런 자극적인 테러 영화로 전락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예를 들어, 테러리스트들과 같은 언어 (힌디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교육받은 상류층 여성인 자흐라를 의심하는 영국인이 등장한다. 투숙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한 아드준의 터번과 턱수염이 무섭다며 자신에게 멀리 떨어져 달라는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180여년동안 인도를 지배한 영국인들의 역사를 생각해볼 때, 아이러니한 장면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테러와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차별로 뒤바꾸려는 사람들의 나약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시크교도인 자신에게 터번이 가진 의미를 차분히 설명해주는 아드준의 모습은 매일매일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일반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한 편, 20대 초반 정도로 어린 테러리스트들의 모순된 모습 또한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자흐라를 인질로 잡아 죽이기 직전, 자흐라는 이슬람 기도문을 소리내어 말한다. 테러조직과 같은 이슬람교도인 것이다. 위대한 알라의 자비를 빌고, 그를 향한 믿음을 말하는 자흐라에 테러범은 흔들린다. 테러범에게는 무고한 인도인들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존재로서, 자흐라에게는 자신을 지켜줄 유일하고 전능한 존재로서 알라가 있는 것이다.
테러, 전쟁, 질병, 종말 같은 개념을 쉽사리 떠올리고, 나의 근처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트라우마와 상처를 남긴 그 모든 사건들을 만들고 견디는 존재가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들임을 주지한다. 이 점이 이 영화를 그저 그런 재난영화가 아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특별한 영화로 만든다. 호텔에 갇혀 테러범들을 피해 숨어야 하는 숨막히는 공포를 체험하게 하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테러를 감행하는 테러범의 모습을 보며 잘못된 신념의 끝을 지켜보게 한다. 진압이 끝난 후, 탈출에 성공한 아드준이 거짓말처럼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바깥 풍경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삶에 대한 감사와 동시에 삶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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