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물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이야기일 것이다. 모든사람들은 나이와 배경을 막론하고 말그대로 성장하는 매일을 살기 때문이다. 2018년에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이스그레이드>가 있었고, 2017년에는 <레이디버드>, 2016년에는 <지랄발광17>가 있었다. 고등학교의 먹이 사슬에서 하층민 정도에 속하는 백인 10대 여성이 잘생긴 남학생을 쟁취하는 구조를 깨트리기 시작한, 성장물의 멋진 예시들이다. 위 영화들은 멋진 남학생과 사랑의 결실을 맺는 존재를 유색 인종으로 설정하였고, 때로는 사랑을 찾는 과정이 아닌, 자신을 찾아가는 성장물을 보여주었다.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구글에서,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한다. 윤리적인 소비에 대해, 바디 포지티브에 대해, 지구 온난화에 대해, LGBTQIA 커뮤니티에 대해서 그 어느 세대보다 깨어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대인 것이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하이틴 성장물의 판도를 이루는 10대 캐릭터의 전형은 깨지고 있으며, 진작에 깨졌어야 했다. <조찬클럽>속 공주병 환자, 운동부, 아웃사이더, 소심한 공부벌레처럼 문제를 하나 씩가지고 있는 10대는 오늘날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스마트>속 주인공과 주변의 인물들은 복합적인 문제, 성향을 가진 오늘날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미 청소년들의 주변에 있던 모습을 담아낸 점에서 새롭지 않은 모습을 담아낸 영화이자, 성장물의 새로운 시작이다.

고등학교 생활 4년을 예일대와 콜롬비아 대학교의 입학을 위해 쏟은 에이미와 몰리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하루 전, 한심한 루저들이라고만 생각했던 학급생들이 모두 아이비리그 대학의 입학을 앞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놀 거 다 놀았던 애들이 명문대 입학까지 따내다니! 에이미와 몰리 입장에선 기가 막힐 따름이고, 졸업식 하루 전 날, 4년동안 못해본 일탈들을 하루만에 끝내기로 결심한다. 에이미와 몰리는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착하지만 왠지 친해지고 싶지는 않은 반 친구들을 연상하게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B급 코미디물의 정석으로 통용되는 <슈퍼배드>속 세스와 에반을 떠올렸고, 실제로 여자판 <슈퍼배드>라는 평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영화 <수퍼배드>의 포스터를 연상하게 하는 포스터 이미지 

하지만 여자버전’<슈퍼배드>라는 말로 이 영화의 가치를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슈퍼배드>만큼 웃기다. 우버 택시 뒷자리에서 포르노를 보면서 레즈비언 섹스에 대해 정보를 얻는 것, 처음 들이킨 약에 취해 비현실적인 바비인형으로 자신의 몸이 뒤바뀐 장면 등 이전 코미디 영화에서 거의 전무했던 여성 듀오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 뿐만 아니라, 공감가는 대사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로 웃음을 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영화는 <슈퍼배드><리치몬드연애소동><아메리칸파이>등 지금까지 청춘물로 소비되었던 수많은 영화들 속 불편한 공식들을 벗어난다. 이 영화에서 대상화 된 10대 여성의 몸을 우상인 것처럼 보여주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을 향한 맹목적인 환상과 구애도 없다. 주인공이 레즈비언이지만, 레즈비언이라는 하나의 요소만으로 캐릭터를 설명하는 성장물은 이제 없다.

성관계에 있어 동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외모가 뛰어나다는 것 만으로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대학은 대학일 뿐이라는 것, 주인공의 짝사랑 상대가 완벽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 이 모든 것에 대해 2020년의 젊은 세대들은 이미 알고 있다. 2030, 2040년의 청춘은 어떤 모습으로 또 변해있을지, 그때의 성장 영화는 어떤 모습으로 그들을 담아낼지 기대가 된다. ‘너무 늙었다는 이유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디카프리오의 아내 역할에 캐스팅 되지 못했던 약 20년 연기 경력의 올리비아 와일드의 첫 감독 데뷔작인 <북스마트>,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영화로 담아주길 간절히 바란다.

 

 

약에 취해 바비 인형으로 변해버린 몸을 담아낸 장면, 몰리는 이 장면에서 기존 자신의 몸과 '대상화'된 새로운 몸 사이 갈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