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hitecture] ‘저장이 곧 전시, 수장고가 된 미술관’
파리 오르세 미술관은 과거 기차가 오고 가던 기차역이었습니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은 자욱한 연기를 내뿜던 화력발전소였죠. 미술관이 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입니다. 여기 그런 미술관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때 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하던 연초제조창, 담배공장이 오늘날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오늘 ‘Art-chitecture’에서 만나볼 미술관은 충청북도에 청주시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입니다.
미술관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큐레이터? 유명한 작품들? 촉망받는 예술가? 또, 미술관은 무엇을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나요? 전시를 볼 수 있는 곳, 혹은 흐름을 선도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네 모두 맞습니다. 제가 생각한 답변도 공유해 드려도 될까요? 저는 미술관 하면 현미경이 생각납니다. 출판이나 연구도 생각나고요.
미술관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미술관에는 정말 “많은” 사람과 업무가 존재합니다. ‘파란만장’이라는 전시를 본다고 칩시다. 그 전시가 미술관에 전시되기 위해서는 많게는 수십 년, 평균적으로는 2-3년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 기간 동안 전시 기획자는 조사와 연구를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작가와 작품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미술, 역사, 정치 등 사회의 모든 것을 연구하고 조사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시 기획이 출발합니다. 전시가 기획 단계에 접어들면 그에 맞추어 행사, 행정, 교육, 출판 등 수많은 업무가 맞물려 함께 진행됩니다.
그중에는 수장·보존 업무도 있습니다. 수장·보존 업무는 소장작품의 문화·예술사적 의미를 보전하는, 미술관의 핵심 업무입니다. 훼손된 작품이 수개월에 걸쳐 복원되고 작품의 숨겨진 비밀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고도의 인내와 집중력, 그리고 섬세함이 요구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수장고와 보존과학실은 항상 미술관 깊숙이 숨겨져 있습니다. 미술관에 간 사람은 많은데, 이 시설을 본 적 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제로 미술관 직원 중에서도 극소수의 직원만이 들어갈 수 있고 철저한 통제 아래 관리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미술관에 전시되는 수많은 작품들은 어디에 보관되고 어떻게 보존되는지 말입니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줄 미술관이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입니다. 국현 청주관은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입니다. 수장형 미술관이란, “기획된 전시와는 달리 특정한 주제와 의도를 갖지 않고 작품과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미술관입니다. 사실 수장고형 미술관은 세계적으로 이미 보편화된 개념입니다. 스위스의 샤울라거 미술관과 루부르 랑스 박물관처럼 말이죠. 실제로 청주관은 샤울라거를 모티브로 두고 건축되었습니다. 샤울라거, 랑스 박물관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작품을 보호하는 장치를 최소한으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소수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더 많은 작품을 수용하기 위해 창고와 같은 효율적 구조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청주관의 수장고는 크게 ‘개방 수장고’, ‘보이는 수장고’로 나뉩니다. ‘개방 수장고’는 관람자가 미술 작품을 쇼핑하듯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수장고입니다. ‘보이는 수장고’는 비교적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작품들이 전시되는 수장고입니다. 그래서 ‘개방 수장고’와는 조금 다르게 유리창을 두고 작품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에는 또, ‘보이는 보존과학실’이라는 공간이 있는데요. 말 그대로 보존과학이 작품에 적용되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유화작품 보존처리실, 유기 분석실, 무기 분석실 3개실의 개방을 통해 관람객에게 보존과학을 소개합니다. ‘보존과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알리는 아주 좋은 취지의 기획입니다.
청주관의 공식 개관을 앞두고 박미화 학예연구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존의 전시장이 백화점이라면 이곳은 코스트코입니다.” 코스트코처럼 저장과 보여주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국내외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수장 공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수장형 미술관은 전시와 수장을 동시에 진행하여 효율적인 운용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이 수집하는 소장품은 미술관의 성격과 가치관에 따라 매우 상이합니다. 소장품을 통해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기에 소장품을 모으고 이를 보존하는 것은 미술관 업무에 있어서 아주 핵심적인 업무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미술관에서는 이러한 수장의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아, 관람자가 이를 알 길이 없습니다. 청주관은 이러한 미술관의 한계를 깨고 청주관만의 특징을 살리고자 다양한 시도를 선보입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0년 5월부터 11월까지 청주관에서 전시된 <보존과학자 C의 하루>는 전시를 통해 미술관의 보존 업무를 전달한 유의미한 기획이었습니다.
또, 청주관은 미술관의 영역을 가시적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전시를 올리는 작업 외에도 미술관에는 다양한 분야의 업무가 있지만, 아직 인지도가 현저히 적고, 특히 수장과 보존 분야의 경우 인식이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관이 앞장서서 미술관의 영역에 대해 목소리 내는 것이 아주 유의미한 시도라 생각합니다. 청주관의 건축을 통해 건축이 제시할 수 있는 미술관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앞으로의 무한한 도약과 변화를 기대하며 이상으로 오늘 ‘Art-chitecture’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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