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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잠시 생각해보니 저는 참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파란만장하게 보낸 것 같습니다. 그 기억 속에는 친구들이랑 축제 장기자랑을 준비하거나 처음 두 발 자전거를 탄 날처럼 행복한 순간도 존재하지만, 막말을 퍼붓던 담임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크게 싸운 일처럼 생각이 날 때마다 지워버리고 싶거나 후회하는 순간들도 존재하겠죠. 그리고 크고 작은 상처도 존재합니다. 오늘 극에서 만나 볼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은 바로 이 어린 시절에 겪은 아픔과 다시 마주 보게 됩니다. 이들은 어른이 되어 과거의 자신을 다시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게 될까요? 세상의 모든 유진이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 뮤지컬 <유진과 유진>입니다.

 

 

 

뮤지컬 <유진과 유진>은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을 무대 위로 재구성한 창작 뮤지컬입니다. 제목처럼 이 이야기에는 이유진이 두 명 등장합니다. 공부와는 거리가 아주 멀지만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의 키가 ‘큰 유진’과 전교 1등 모범생으로 조용한 성격의 키가 ‘작은 유진’.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같은 반 친구로 만나게 되고, 새싹 유치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를 만나 반가웠던 큰 유진이 인사를 하지만 작은 유진은 사람을 잘못 봤다고 얘기하며 무시합니다. 큰 유진은 혹시 유치원 때 겪었던 일 때문에 모르는 척하는 건지 다시 물어보지만, 그런 일은 겪은 적 없다면 또 무시당하죠. 이후 둘은 서로를 싫어하는 부류로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더 이상 엮일 일 없이 지낼 것 같았던 둘은 작은 유진이 수학여행에서 겪게 되는 일로 인해 과거의 기억이 차츰 떠올라 ‘그 일’을 알고 싶어 큰 유진에게 물어보면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과연 무슨 일일까요. 작은 유진은 잊혀진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유진과 유진>은 ‘아동 성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유치원 때의 ‘그 일’이 원생들에게 원장이 저지른 추악한 범죄입니다.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성폭력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뿐 아니라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고, 일이 벌어진 이유를 자신을 지키지 못한 피해자의 잘못이라고 말하며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는 ‘2차 가해’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은 유진의 가족은 ‘그 일’을 당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유진이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또 큰 유진은 남자친구의 엄마가 전에 ‘그 일’을 당한 애랑 그만 만나라고 말해 이별을 통보받죠. 2차 가해는 심리적인 피해가 명백히 존재함에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본인의 일이 아니라고 막말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 매번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어야 하는데 당한 사람이 더 숨어 살아야 하고, 더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일인가요? 말이라는 것은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기에 항시 조심해서 얘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에 취해, 할 말은 한다는 자기 자신에 취해, 사랑에 눈이 멀어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뱉습니다. <유진과 유진>은 이런 상황들을 자극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으면서 잘못되었다고 말해준다는 점에서 정말 필요하고 좋은 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뮤지컬 <유진과 유진>은 ‘홍연’, ‘상사화’를 부른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 작곡을 맡아 개막 전 화제가 되었죠. 평소 뮤지컬에서 잘 들어보지 못한 느낌의 넘버가 많아서 저도 신기하면서도 어색하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출연 배우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멜로디에도 스토리를 탄탄하게 담아와서인지 감정이 음악에도 묻어나 좋았습니다. 최근 극 중 작은 유진과 작은 유진의 엄마가 부르는 넘버를 실제 어머님과 함께 부른 ‘잊는다고 없던 일이’ 음원이 발매되었습니다. 딸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았던 엄마가 딸에게 이야기하는 내용을 실제 엄마의 목소리로 들으니 가사의 내용이 확 와닿아서 저는 듣자마자 엄마가 보고 싶어서 또 엉엉 울었습니다. 안예은 님뿐 아니라 <유진과 유진>은 정말 멋있는 창작진들이 함께 만들었는데요. 이기쁨 연출님, 김솔지 작가님, 양지혜 음악감독님, 이현정 안무가님, 그리고 5명의 유진이들까지 모두 여성이라는 점, 알고 계셨나요? 단지 여성들이 만들어서 좋다는 게 아니라 이들이 같이 만들어낸 시너지가 객석까지 전달이 되었기에 ‘매진과 매진’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자리가 없어서 못 본 게 글을 쓰는 지금도 아쉽습니다. 얼른 OST라도 내주세요!

 

 

 

 

 

개인적으로 무대의 인물 중 한 명에 이입해서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입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까지 저랑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소름 돋을 정도로 큰 유진은 그냥 중학생 시절의 저였습니다. 머리도 한 묶음으로 묶고 점심시간에 좋아하는 아이돌 뮤직비디오 보겠다고 교실 컴퓨터 앞에 자리 잡고 있고, 학교에서의 낙은 친구들이랑 왁자지껄 떠드는 것이고 집에 와서 엄마한테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다 말하는 아이.  제일 소름 돋았던 건 큰 유진이 반에서 자기만 휴대폰 아직 없다고 엄마와 싸우는 부분이 있는데, 저희 부모님도 유진이 엄마처럼 폰 사주면 공부 안 하고 아이돌만 찾아보면서 쓸데없는 짓 한다고 고등학생 때까지 폰 안 사준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 장면을 보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있는데 나는 왜 맨날 밖에서 전화하려면 콜렉트 콜로 얘기해야 하고 교내 교육용 메신저로만 친구들이 대화해야 하냐고 부모님이랑 싸우고 반 남자아이가 아직도 폰 없냐고 놀렸다고 엄청 울면서 밥 안 먹고 이러다 (..) 중학교 올라가서 처음으로 폰을 샀던 13살의 제가 생각이 났어요. 그다음 우물쭈물 엄마랑 화해하는 방식과 그 대화마저도 똑같아서 혹시 제가 모티브인가 싶었다니까요. 또 ‘미운 오리 새끼’ 들을 땐 경상도의 첫째로 태어나 막내인 남동생과 차별받은 순간들도 생각이 나 넘버가 마음에 너무 와닿아 엄청 울면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큰 유진에게 저를 투영해서 보면서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위로를 받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공연에서도 이런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원작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30살이 된 두 유진이 중학생 시절의 자신들을 재연하는 ‘사이코 드라마’ 형식을 사용하여 그 시절에 받았던 상처들과 마주하도록 만듭니다. 작은 상처일지라도 안 좋은 기억을 다시 꺼내는 건 힘든 일이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의 어른이 된 유진이들이 이제 그 상처를 제대로 보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에서 상처의 회복, 그리고 성장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2인극이다 보니 여러 인물을 한 배우가 맡아서 진행하면서 큰 유진의 엄마는 작은 유진이, 작은 유진의 엄마는 큰 유진이 연기하는데요. 마지막 부분엔 각자 자신의 엄마를 연기하여 그 시절의 엄마와 마주 보면서 그때는 완전히 알지 못했던 그를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만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 그때의 괴로움이 모두 자신의 잘못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어른의 잘못을 용서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연출이 너무 좋았습니다. 엄마도 아이를 기르는 것이 처음이지만, 아이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처음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10년을 넘게 묵혀진 상처가 어떻게 한순간에 치유가 되겠어요. 그럼에도 곪은 상처가 다시 덧나지 않도록 꼭 안고 한 발짝씩 나아간다는 점이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도 손을 뻗어주는 것 같습니다. 유진이가 유진이에게, 그리고 어른이 된 유진이가 어린 유진이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나아가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엄마의 나이가 된 ‘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제일 해주고 싶을까요?

 

 

아직 엄마의 나이가 되기까지는 남았지만, 일단은 “틀려도 괜찮아”라는 말을 가장 해주고 싶습니다. 벌써 2021년도 날씨가 쌀쌀해져 패딩을 준비해야 하는 계절이 왔고, 저의 22살도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그 말은 즉슨 이제 곧 스물셋이 된다는 것이죠. 저에게 23살이란 어른을 뜻하는 나이와 같습니다. 왠지 모르게 23살은 자신의 행동에 전부 책임을 져야 하고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오롯이 혼자 알아서 살아가야만 할 것 같은 나이처럼 느껴진달까요. 근데 그도 그럴게 만약 계속 학교를 다녔다면 내년에 4학년이 될 거고 그럼 졸업을 생각해야 하고, 취업을 생각해야 하고, 소속감 없이 내 이름 석 자만이 나를 수식할 단어로 남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잖아요. 물론 저는 저런 상황이 벌써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이 무서워 냉큼 휴학을 했지만요.

 

그치만 휴학도 걱정을 날릴 특효약은 아녔습니다. 막연히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것들을 이젠 확실히 정해야 하니 그를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휴학을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흘러가니 오히려 더 촉박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제가 선택한 길이 정답임을 확인받고 싶은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미래의 내가 와서 길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사주 같은 거 찾아보면서 적성 직업에 내가 고른 분야가 있는지 막 찾아보고 쬐끔이라도 있으면 좋아하고. 근데 그러다가도 주변에서 계속 대외활동, 어학연수, 자격증 공부 등을 하니까 저도 해야만 할 것 같고, 저도 막연하게 되고 싶은 것을 꿈꿀 게 아니라 조금은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나 심란한 날의 연속이었던 거 같습니다.

 

근데 사실 아직은 이런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싶습니다. 물론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겠지만, 백세시대라고 볼 때 스물둘과 스물셋은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하기엔 아직 앞길이 창창하잖아요. 지금 하는 게 틀린 길이면 어떻고 돌아가면 또 어떤가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이 나의 길이 아닐지라도 다른 길로 가는 발판을 만들어 줄지도 모르고, 다음부터는 똑같은 실수를 안 저지르면 된다고 말해주는 주의가 될 수도 있고 저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니 괜찮다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여주고 싶어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그 길을 언제나 응원할게.’ 저희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저에게 해줬던 말인데, 들어도 들어도 가장 힘이 되는 말인 거 같아요.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렇기에 또 한 발짝 다시 나아갈 힘이 생기는 것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도 저를 토닥여주고 싶어요.

 

여러분도 지금 잠깐 모든 걱정을 접어두고 자신을 한 번 쓰다듬어주는 건 어떨까요? 한 번 사는 인생 걱정만 하다가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유진과 유진>에서 제가 참 좋아하는 장면이 있어요. 큰 유진이랑 작은 유진이가 정동진으로 떠나는 ‘탈출’이라는 넘버인데요. 스페셜 커튼콜 넘버라 유튜브에 많은 분이 찍어주신 영상이 올라와 있으니 앞만 보며 달려왔던 분, 지금의 상황이 조금 답답하신 분, 그냥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분들게 한 번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지나면 돌아오지 않아 내 곁엔 네가 있잖아 맘대로 한 번 해보자 세상을 한 번 이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