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페이지인 만큼 ‘N을 위하여’에 대해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공연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극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생각하면서 보기도 하고, 그와 관련된 나의 경험을 끌고 오기도 하고, 때론 집중이 되지 않아 끝나고 뭐 먹을까 생각하기도 할 겁니다. 물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극에 빠져 있을 수도 있겠죠. 저는 극이 제시해주지 않는 숨겨진 이야기나 전후의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보기도 하고, 나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가정을 하면서 공연을 보곤 합니다. 그렇게 보다 보면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감정에 공감하니 극에 더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몰입. ‘N을 위하여’는 바로 이 (과)몰입에 의한, (과)몰입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아, N이 누구냐고요? MBTI에서 N과 S는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죠. 바로 이 N들을 위한, 그리고 E’N’FP인 저를 위한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 골목 곳곳 음악이 흐르고 예술과 낭만이 가득한 거리. 이런 파리의 골목에 앉아있는 한 남자는 자정을 알리는 시계 종이 울리면 피카소와 헤밍웨이의 192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게 됩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인데요. 아마 보신 분도 계실 거고, 들어만 보신 분도 계실 겁니다. 많은 분이 인생 영화라고 칭할 정도로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잘 담아낸 영화인데요. 리뷰 중 한국에도 이런 주제를 가진 영화가 나온다면 어떤 시대의, 어떤 예술가들을 만나게 될까 궁금하다는 댓글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보자마자 떠오른 작품이 하나 있었죠. 네! 물론 한국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 영화는 아니고 뮤지컬로요. 1956년 명동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뮤지컬 <명동로망스>입니다.

 

 

 

 

뮤지컬 <명동로망스>는 2015년 초연, 2016년 앵콜, 2018년 재연에 이어 2021년 3연이 4개월간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됐습니다. 잠시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명동 주민센터에서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일하는 9급 공무원 장선호는 명동 개발에 방해가 되는 오래된 다방을 철거하기 위해 명동의 로망스 다방으로 갔다가 갑자기 1956년으로 타임슬립을 하게 됩니다. 이 다방에는 당대의 여러 예술가가 존재했는데요. 대한민국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다면 흔히들 알고 있을 화가 이중섭과 작가를 꿈꿨던 수필가 전혜린, 그리고 모더니스트 시인 박인환도 있습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며 지금 이 순간을 뜨겁게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저 앞만 보고 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선호는 차츰 자기 마음속의 이야기를 찾게 됩니다.

 

후에 2021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좋은 추억으로 <명동로망스>를 보게 된 것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딱 지금의 저에게 잘 맞았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봤을 때는 현재의 고민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는 대로 해도 괜찮을 거라고 응원의 위로를 보내주는 거 같았달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걸 가장 열심히 해야죠!' 그 후에는 볼 때마다 아무리 현실에서 힘든 일이 있었더라도 극장에 앉아 있는 2시간 만큼은 따뜻한 다방 식구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것들을 잠시 잊고 눈앞에 펼쳐지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웃음이 나면 웃고 눈물이 나면 울면서 정말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이 극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게 보고 나오면 그래도 남은 하루를 다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원동력을 얻었다고 해야하나. 물론 지금은 공연이 끝났지만 다음에 다시 온다면 꼭 봐줬으면 좋겠어요. 제 사람들이.

 

 

 

 

여기서 만약 여러분이 1956년의 명동으로 갈 수 있다면, 어떤 예술가들을 만나고 싶으신가요?

 

 

공연을 보는 내내 이 질문에 대해 자주 생각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바로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선호처럼 어느 순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갈 수 있다면'으로 설정을 해서 그런지 괜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분을 만나뵈어야만 할 거 같아서 더 생각이 안 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아본 것 같습니다. 다들 들어보셨지 않나요. '훌륭한 사람들은 다들 자신만의 롤모델이 있다. 그러니 너에게도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분에게 편지를 써봐라.' 그때도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어서 WHY 책이나 위인전 중에서 그냥 많이 들어본 분을 선정했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예전부터 과거의 사람을 보며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거 같아요.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나 자신밖에 없는 거 같은데 ... 바로 떠오르지 않는 걸로 봐서 한 분을 콕 집어서 얘기할 수는 없을 거 같네요.

 

그래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술가들이 있을 공간을 제공해준 그 시절 다방의 주인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지금도 거리를 걸어보면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탐앤탐스 등 다양한 브랜드의 카페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요. 우리는 이곳을 혼자 공부를 하는, 친구와 수다를 떠는 공간으로 이용합니다. 그렇다면 1950년대의 다방은 어떤 식으로 쓰이고 있었을까요. 그때의 다방은 예술인들을 포함하여 예술 지망생,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단순히 쉬면서 커피나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예술가들이 모인 만큼 그들의 작업실이자 연극 무대이자 영감이 떠오르는 장소이자 예술에 관해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토론장이었습니다. 서울 명동을 중심으로 다방 거리가 자리 잡았고 한국 전쟁 때에도 대구나 부산 광복동을 중심으로도 다방이 활성화되어 예술의 열정은 끊기지 않고 이어나가질 수 있었습니다.

 

근데 뮤지컬 <명동로망스>의 ‘고료 받으셨으면 저한테 밀린 외상값이나 갚으세요’라는 마담의 말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 가난한 예술가들이 와서 외상으로 커피를 마시고 가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그럼에도 그들에게 장소를 제공해주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졌거든요. 지금의 세상에서는 약간 생각을 못 할 일이니까. 제가 너무 넓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시대의 다방 주인들은 어쨌든 예술가들에게 작업실, 무대 등의 예술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이잖아요. 이게 (영리적인 목적도 있겠지만) 예술경영인의 한 모습으로 생각되어서 ‘와! 예술경영 선배님이다~!’의 마음이 되었달까요.

 

또, 유명한 일화도 있잖아요. ‘은성’에서 시인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고 이진섭이 즉흥으로 곡을 쓰고 가수 나애심이 그 자리에서 부른 노래가 바로 ‘세월이 가면’이라는 이야기. 물론 이건 술집에서 탄생한 일이지만, 만약 시대의 한 장면을 골라 갈 수 있다면, 이 노래가 만들어지는 그 순간에 가고 싶습니다. 저도 선호처럼 그 시절 다방에서 주인을 도와서 일을 하면서 곁에서 여러 예술가를 바라보고 싶달까요. 어떤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그 순간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요. 여러분은 어떤 시대의 어떤 예술가들을 만나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