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되고 회전 극이 끝나면서 관극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되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어떤 작품으로 파랑파란을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다 그 어떤 회전 극 보다 많이 보고 분석한 극이 생각났다. 바로 연극 <다섯 가지 동일한 시선>이다. 200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 당선작으로 올해 제작 워크샵*에서 각색했던 작품이다. (*문예경 2학년 전공수업) 관객이 아 니라 제작자의 입장으로 작품을 보다 보니 처음 대본을 받은 그 날부터 공연을 올리는 날까지 끊 임없이 고민했기에 그때 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싶기도 했고, 마침 이 글이 올라가는 12월 14일에 온라인 중계가 있기에 공연을 보신 분들도 같이 생각해봤으면 해서 두 번째 작품으로 골랐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얘기하자면, 28살의 평범한 취준생인 김은정이 타임머신을 타고 온 18살의, 38 살의, 48살의 나, 58살의 나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삐딱하게 굴고 싶은 사춘기 시절의 10대, 취업준비가 한창이라 걱정이 많은 20대, 직장 안에서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30대, 지난 시간 을 후회하며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40대, 그리고 모든 것을 인정하고 현재를 잘 살아가려는 50대까지, 그들은 모두 한 사람이지만 전부 다른 가치관을 선보인다. 마치 다른 사람 같은 수많은 ‘나’가 한자리에 모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그리고 내가 만약 ‘28살 김은정’이 된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온 미래의 나를 보고 어떻게 행동할까?

 

처음엔 절대 안 믿을 거 같다. 요즘엔 워낙 이상한 사람이 많다 보니 인터넷 방송 콘텐츠 중 하나 인가 싶기도 할 거고, 끈질기게 나라고 한다면 미친 사람인가 싶기도 할 거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한테 오늘 이상한 일 있었다면서 얘기할 거리에 지나지 않을 거 같은? 그리고 평소 시간 여행이나 타임머신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나 나오는 환상이라 생각하기에, 그런 물체를 본다면 놀라서 소리 지르기는커녕 꿈인가 싶어 볼부터 꼬집을 거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가 어제 쓴 일기라던가 나만 아는 비밀에 대해 알고 있다면? 거기다 미래의 로또 번호나 주식 동향 파일을 가지고 있다면? 무서움은 호기심으로, 호기심은 솔깃함으로 바뀔 것 이다. 최근의 나는 이제 곧 3학년이 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진로 선택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는 데, 적성과 안정적인 수익 사이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한다고 해도 과연 그 선택이 옳은 걸 지 확신이 들지 않아 걱정이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덜컥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한 심정인데, 이때 나3처럼 미래의 내가 명함을 들고 나타나면 해답지를 발견한 느낌일 거다. ‘나 결국 이런 선택을 했구나’, ‘그래도 사회 나가서 밥벌이는 하고 살고 있구나’ 이런 느낌?

 

인생의 길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믿지는 않지만, 안정감을 원하기 때문인지 시험이나 면접, 공연 같은 큰일이 있을 때마다 꼭 사주 사이트에서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고 좋은 결과는 그대로 믿고 나쁜 결과는 조심하라는 것만 믿고 따른다. 그리고 행운의 아이템, 행운의 색 같은 것도 유심 히 본다. 아마 미래의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아까 말했듯이 인생의 길이 정해져 있다고 완전히 믿지는 않기에, 성공한 나를 보면 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생길 거고, 실패한 나를 보면 보완해야 할 부분을 고쳐나가서 미래를 바꾸면 되지 않나.

 

그래서 사실 나4 같은 미래의 나를 만난다면 살짝 답답할 거 같다. 나4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다들 한 번씩 생각해본 적 있지 않나. 과거의 내가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근데 그걸 무작정 원점으로 돌리려고 하는 점이 답답할 거 같 다. 내 선택에 따른 결과도 알았으니 주식 동향 파일이라던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은 그대로 가지고 있고 같은 실수를 안 하기 위해 그 방법을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극에선 나와 같은 생 각을 하는 28살 김은정이 멍청하다고 하는데, 아니! 내가 은정이라도 같은 선택을 할 거다! 적어도 21살의 나는.